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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007 11 25 WarMemorial 120.JPG|thumb|240px|[[전쟁기념관]]에 전시 중인 제헌 헌법. 사진은 첫 장이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大韓民國制憲憲法)<ref>국가법령정보센터 /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53081#0000 대한민국헌법 제1호 1948. 7.17 제정 및 시행]</ref> 또는 '''대한민국 헌법 제1호'''(大韓民國憲法第一號)는 [[1948년]] [[대한민국 제헌 국회]]가 제정하여, [[1952년]]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헌법으로, '''건국 헌법'''(建國憲法)이라고도 한다. '''전문'''과 '''본문''' 10장 130조로 구성되었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大韓民國制憲憲法)<ref>국가법령정보센터 /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53081#0000 대한민국헌법 제1호 1948. 7.17 제정 및 시행]</ref> 또는 '''대한민국 헌법 제1호'''(大韓民國憲法第一號)는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제헌 국회]]가 제정하여, [[1952년]]까지 [[7월 7일]] [[대한민국 헌법 제2호]] 공포 전까지 존재한 [[대한민국]]의 헌법으로,헌법이다. '''건국대한민국 헌법'' 제1호'(大韓民國憲法第一號)이라고도라고도 한다. '''전문'''(前文)'''본문'''(本文) 10장 130조로 구성되었다.
==제정 과정==
[[제2차 세계 대전]]이 [[대일본제국|일본]]의 패망으로 끝나고,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양 연합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게 되었다. 이후 [[38선|북위 38도]]를 기준으로 북쪽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군정을 실시하게 되었고, 한반도의 장래 문제는 [[모스크바 협정|모스크바 3상회의]]와 [[미소공동위원회]]를 거치면서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5년간의 신탁통치를 통해 완전한 독립을 도모하기로 한 안이 나오게 되었지만 한국인들의 강한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1948년]] [[2월 27일]], [[국제 연합 총회|UN총회]]에서는 [[총선거]]를 실시하되, 가능한 지역 내에서만 실시하여 정부를 수립하기로 결의하였다. 결국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최초의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198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제헌국회|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 제정 과정 ==
제헌국회는 초대국회의장에 [[이승만]]<small>/[[대한독립촉성국민회]]</small>, 부의장에 [[신익희]]<small>/[[대한독립촉성국민회]]</small>, [[김동원 (1884년)|김동원]]<small>/[[한국민주당]]</small>을 각각 선출하여 대한국민정부수립을 위한 활동을 개시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대일본제국|일본]]의 패망으로 끝나고,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양 연합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게 되었다. 이후 [[38선|북위 38도]]를 기준으로 북쪽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군정을 실시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대일본제국|일본]]의 패망으로 끝나고,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양 연합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게 되었다. 이후 [[38선|북위 38도]]를 기준으로 북쪽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군정을 실시하게 되었고, 한반도의 장래 문제는 [[모스크바 협정|모스크바 3상회의]]와 [[미소공동위원회]]를 거치면서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5년간의 신탁통치를 통해 완전한 독립을 도모하기로 한 안이 나오게 되었지만 한국인들의 강한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1948년]] [[2월 27일]], [[국제 연합 총회|UN총회]]에서는 [[총선거]]를 실시하되, 가능한 지역 내에서만 실시하여 정부를 수립하기로 결의하였다. 결국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최초의 [[대한민국 제헌국회 총선|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198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제헌국회|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제헌국회는[[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최초의 [[대한민국 제헌 국회 총선|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198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제헌 국회|제헌 국회]]가 구성되었다. 제헌 국회는 초대 초대국회의장에국회의장에 [[이승만]]<small>/[[대한독립촉성국민회]]</small>, 부의장에 [[신익희]]<small>/[[대한독립촉성국민회]]</small>, [[김동원 (1884년)|김동원]]<small>/[[한국민주당]]</small>을 각각 선출하여 대한국민정부수립을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위한 활동을 개시하였다.
 
동년 6월 1일 소집된 제2차 국회 본회의를 열어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과 국회법 기초위원을 선임하기 위한 전형위원(각 도별로 1인)을 선출하였고 이들 전형위원으로 하여금 기초위원 30인을 선출케 하였다.
 
<blockquote>
:위원장 : [[서상일]]
:위 원 : [[유성갑]] [[윤석구]] [[최규각]] [[김옥주 (1915년)|김옥주]] [[신현돈 (정치인)|신현돈]] [[김경배]]
 
</blockquote>
[[서상일]]위원장을 중심으로한 기초위원들은 당초에 내각책임제로 기초하였던 헌법안을 대통령중심제로 하려는 이승만의장의 의도에 따라 대통령중심제로 기초완료되어 이것이 6월 23일 본회의에 상정.통과되어 7월 17일 이승만의장이 서명/공포함으로써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이 발효하였다.
 
[[서상일]] 위원장을 중심으로한중심으로 한 기초위원들은 당초에 내각책임제로[[의원 내각제|내각책임제]]로 기초하였던 헌법안을 대통령중심제로[[대통령제|대통령중심제]]로 하려는 이승만의장의이승만 의장의 의도에 따라 대통령중심제로 기초완료되어기초 이것이완료하였고, 이 헌법안이 6월 23일 본회의에 상정.·통과되어 7월 17일 이승만의장이이승만 의장이 서명/공포함으로써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이 발효하였다발효되었다.
==주요 내용==
 
== 주요 내용 ==
제헌 헌법은 전문에서 [[3·1 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을 건립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법(또는 헌장·약헌 등)에서도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밝힌 것과 함께 살필 때,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대한민국 헌법|현행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이러한 법통의 계승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특징적인 점은 사기업에서 근로자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익을 균점할 권리가 인정되었다는 것이다(제18조). 또한 제2장에서는 자유권을 비롯하여 사회적 기본권, 참정권 등의 다양한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은 이후의 정치적인 면을 살펴볼 때 소홀하게 다루어지고, 존중되지 않은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경향은 수차례의 개정 뒤에도 자주 나타나게 된다.
 
== 같이보기 ==
*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