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해군 군축 회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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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929년]] [[6월 14일]], 영미 간의 예비 협상에서 진전이 있었기 때문에, 각국을 초청하여 런던 해군 군축 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다. 당시 [[하마구치 내각]]은 방만한 재정의 정리를 내걸고 또한 [[러일전쟁]] 때 발행한 [[국채]]의 상환 시기를 앞두고 있었다. 따라서 다른 열강과 협조를 하면서 [[군축]]을 통해 군비를 절감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이었다.
 
== 의의 ==
 
이 조약이 체결되기 전인 [[1927년]]에 개최된 제네바 군축 회의에서는 미국과 영국 간의 의견 마찰로 인해 협상이 난항을 겪었는데, 런던 해군 군축 조약은 그러한 난관을 뚫고 이룬 결실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워싱턴 조약에서 결정된 표준 배수량<ref>표준 배수량(The standard displacement)은 워싱턴 군축 조약에서 정한 선박 톤수 및 적재물에 대한 기준이다. 그 기준에 따르면 선박 운항에 쓰일 연료와 비축 용수를 제외한 총 적재물의 양으로 되어 있다.</ref>과 [[잠수함]] 탑재 함포의 구경이 처음으로 제한된 것도 이 조약에서였다.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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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배수량은 15만톤 (미), 15만톤 (영), 10만 5500톤 (일) 비율 10 : 10 : 7
:구축함에만 이러한 복잡한 규정이있는 것은 일본이 보유한 후부키급(特型) 구축함 같은 대형 구축함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 의의 ==
이 조약이 체결되기 전인 [[1927년]]에 개최된 [[제네바 군축 회의에서는회의]]에서는 미국과 영국 간의 의견 마찰로 인해 협상이 난항을 겪었는데, 런던 해군 군축 조약은 그러한 난관을 뚫고 이룬 결실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워싱턴 조약에서 결정된 표준 배수량<ref>표준 배수량(The standard displacement)은 워싱턴 군축 조약에서 정한 선박 톤수 및 적재물에 대한 기준이다. 그 기준에 따르면 선박 운항에 쓰일 연료와 비축 용수를 제외한 총 적재물의 양으로 되어 있다.</ref>과 [[잠수함]] 탑재 함포의 구경이 처음으로 제한된 것도 이 조약에서였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