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가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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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15-09-05}}
[[파일:Ashigaru groom (1).JPG|250px|thumb|right|]]
'''아시가루'''({{lang|ja|{{ja-y|足軽|あしがる}}|족경}}{{해석|[[경보병]]}})는 [[헤이안 시대]]에서 [[에도 시대]]까지 일본에 존재했던 [[보병]]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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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에서의 군대 ==
[[오닌의 난]]에서, 미야코(현대의 [[교토]])를 약탈하고 불태웠을 때 아시가루들은 다루기 힘든 군대라는 평판을 얻었다. 이어지는 [[센고쿠 시대]]에서 전쟁의 양상은 사무라이의 면대면 전투로부터 아시가루의 집단 전투으로 바뀌었다. 그럼으로서그럼으로써 아시가루는 전투의 주요 병력이 되었고 그들 중 몇 몇은 큰 명성을 발휘했다.
 
아시가루의 통제권을 받은 병사들은 ''아시가루가시라''라고 불렸다. 그들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자신의 많은 무사 추종자들을 사무라이 신분으로 상승시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야마우치 가즈토요]]는 그런 사무라이 중 하나였고 나중엔 아시가루에서 승급한 다이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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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병의 중단 ==
[[도쿠가와 막부]]의 출현에 따라 아시가루의 징집은 이름만 남게 되었다. 직업군에 대한 아시가루의 변화는 [[오다 노부나가]] 이후로 진전되었기에 점진적으로 아시가루는 농민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에도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에서는 아시가루의 지위가 고정되었고 200년 이상 징병이 폐지됐다. 아시가루는 몇 몇 번(영지)에서는 사무라이 계급으로 여겨졌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토막글|일본사}}
 
[[분류:에도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