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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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독재정권 ====
[[20세기]]에 들어서도 [[쿠데타]]가 빈번하여 세계 [[경제 대공황]]기에 집권한 마르니테스 군사독재정권 기간에는 3만 명에 달하는 국민이 국가폭력으로 [[학살]]당했다. [[1944년]] 다시 [[쿠데타]]로 마르니테스 정권은 붕괴하였으나, 이후에도 [[쿠데타]]로 정권 교체가 계속되었다. 혼란의 와중에서 많은 사람이 주변 각국 및 [[미국]]으로 [[경제]] [[이민]]이 되어 떠나가 엘살바도르인의 해외 인구 비율은 세계적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 [[1969년]]에는 국경 분쟁 및 온두라스로 유입된 엘살바도르인들의 지위 문제 등 알력이 있었던, 온두라스와 축구 시합을 계기로 [[축구 전쟁]]이 벌어졌다. 1980년대에는 [[좌파]] 계열의 [[인민 해방 전선]]과 소수의 군인정치가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지주들이 [[폭력]]으로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우파]] 군사 독재 정권<ref>
[[미국]]의 [[후터라이트]] [[목사]]이자 부르더호프(형제)공동체 장로인 한스 크리스토프 아놀드가 쓴 《시련을 넘어 천국을 본다》(미션툴)에는 엘살바도르 군사 독재 정권과 [[로마 가톨릭교회]]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나와 있는데, 당시 엘살바도르 군사 독재 정권은 소수의 군인정치가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지주들이 권력과 부를 독점한 과두 정부였고, 대부분 지주 계급으로 구성된 과두 정부에 의해 많은 농민이 학살당하거나 난민이 되었다. 당시 엘살바도르 [[로마 가톨릭교회]] 지도자인 [[오스카오스카르 로메로]] [[대주교]]는 그를 지지한 [[사제]]들과 함께 군사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ref> 간에 내전이 발생한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의 [[미국]]은 엘살바도르 군사 독재 정권을 지원하였는데, 전투 및 우파 정부군에 의한 민간인 살상등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또한 사회 구원을 강조하는 설교<ref>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엘살바도르 [[기독교인]]에게 “구원은 죽어서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닌,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라고 설교하여 기독교인들의 민주화 운동 참여를 독려하였으며, 미사시간에 강론할때마다 군사 독재 정권을 비판해 왔다.</ref>로 기독교인의 민주화 운동 참여를 격려해 온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도 군사 독재 정권의 [[폭력]]에 의해 암살당한다. 이 시기의 엘살바도르와 대주교 암살 사건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살바도르》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1970년]]쯤에는 [[온두라스]]와 [[축구 전쟁]]이 벌어지고 이 축구 전쟁에서 승리한 엘살바도르가 월드컵에 나가게 되었다.
 
==== 정치적 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