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산 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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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이란의 역사}}
 
'''사산 왕조'''({{llang|fa|ساسانیان}})는 [[아르다시르 1세]]가 세운 고대 이란 왕조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한 왕조라는 뜻으로 '''사산조 페르시아'''('''사산 왕조 페르시아''') 또는 '''사산조'''('''사산 왕조''')로 불리기도 하였다.
 
[[페르시아 제국]]의 한 왕조라는 뜻으로 '''사산조 페르시아'''('''사산 왕조 페르시아''') 또는 '''사산조'''('''사산 왕조''')로 불리기도 하였다.
 
== 역사 ==
[[226년]] 서부 [[이란]] 지역에서 통치기반을 굳힌 파르티아의 지방영주 [[아르다시르 1세]]는 동부지역으로 진출하여 여러 부족들을 차례로 정복했다. 그는 자신을 '이란족의 왕 중 왕'이라 칭하고, 티그리스 강변의 고대도시 [[셀레우키아]]를 '아르다시르의 착한 행위'라는 이름으로 재건하여 [[크테시폰]]과 함께 그의 위세를 떨쳤다.
 
그의 아들 [[샤푸르 1세]]는 영역을 더욱 넓혔다. 여러번 [[로마 제국|로마]]군과 싸워 로마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238년 ~ 244년)는 전사시켰고, 황제 [[발레리아누스]](253년 ~ 260년)를 포로로 잡을 정도로 샤푸르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래서 그는 '이란족과 비(非)이란족의 왕 중 왕'이란 칭호를 사용했으며, 이 칭호는 사산 왕조 말기까지 지속되었다. 사산 왕조의 영역은 [[파르티아]] 때보다 훨씬 광대했는데, 이것은 그 행정력이 효율적이었고 군사력이 막강했음을 뜻한다. [[중앙 아시아]] 쪽의 동북부 국경지역에서 [[아르다시르 1세]]와 [[샤푸르 1세]]는 [[쿠샨 왕조]]의 서부지역을 정복했다. 이후 사산 왕조의 외교정책은 변방의 방어와 영토확장에 목적을 두고 추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