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 레이더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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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부터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되자, 쌍방울 레이더스의 야구단 운영은 더욱 가혹해지는데, 비싼 돈을 주고 선수를 쓸 수 없었고 중도 퇴출되어도 마땅히 대체 선수를 데려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98년]]에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지 않았다. 이 시즌에는 [[김기태 (1969년)|김기태]], [[최태원 (야구인)|최태원]], [[조원우]], [[김원형]] 등이 활약하여 정규 시즌 6위로 마쳤다.
[[1999년]]이 되어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만 갔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9년]]에 제이크 비아노, 전해 [[LG 트윈스]]에서 마무리로 뛰었던 마이클 앤더슨 등 투수 용병 선수를 영입하였지만, 이들은 쌍방울 레이더스의 열악한 시설 환경과 [[김성근 (야구인)|김성근]] 감독의 훈련량에 못 따라가 시즌 6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는 등 극심한 부진을 보여 중도 하차했다. [[1999년]] 드래프트에서는 일부 대학 진학자를 제외한 고졸 선수들의 지명을 포기하고, 2차 1순위로 지명한 [[한양대학교]] [[투수]] [[라형진]]은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권을 양도했으며, 1차 지명자인 [[군산상업고등학교|군산상고]]의 [[이진영]]만 계약했을 정도였다.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승호 (1981년)|이승호]]와 [[엄정욱]] 등을 지명하지만, 2차 1순위로 지명한 [[투수]] [[마일영]]의 지명권을 [[현대 유니콘스]]에게 매각할 정도였다. 구단 대주주였던 모기업인 쌍방울이 사실상 팀 운영을 할 수 없게 되면서 [[
== 구단 해체와 [[SK 와이번스]]와의 연관성 논란 ==
IMF 여파로 극심한 재정난을 겪어야만 했던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은 [[1998년]]부터 주축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선수 팔기' 작업식으로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마지막 해였던 [[1999년]]에는 신인 지명자들 중 1차 지명한 [[군산상업고등학교]] [[외야수]] [[이진영]]만 계약하고 2차 1순위로 지명한 [[한양대학교]] [[투수]] [[라형진]]은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권을 양도하였으며, 다른 선수들 중 몇몇 대학 진학 선수들을 제외한 고졸 지명 선수들과는 계약하지 않을 정도로 운영난을 보였다. [[1999년]] [[7월 16일]] 이의철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주가 [[박용오]] [[
하지만 매각 협상은 지지부진하여 진전이 없었고, 결국 [[1999년]] [[11월 16일]], 쌍방울 레이더스 김종철 신임 구단주는 [[박용오]] [[
이때, 프로 야구단에 관심을 보인 [[SK그룹]]은 쌍방울과의 협상을 철저히 배제하고, [[
결국, 쌍방울은 얼마 못 가 [[2000년]] [[1월 7일]] 해체를 선언하고, [[SK그룹]]은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SK그룹]]이 [[한국 프로 야구]]에 참여할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게 된다.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는 해체되었고, SK는 인수가 아닌 새 팀의 창단으로 레이더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해체 후 재창단이라는 과정을 거친 [[SK 와이번스]]는 당시 [[현대 유니콘스]]가 연고지를 이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연고지를 [[인천광역시]]로 이전하면서 새로운 인천 연고 구단으로 독자적인 역사를 시작한다. 이 과정은 훗날 [[넥센 히어로즈|히어로즈]]의 창단 과정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히어로즈 또한 [[현대 유니콘스]] 해체 후 재창단의 과정을 거쳐 현대와 히어로즈의 연결고리를 끊고, 현대가 [[
== 주요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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