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소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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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활동을 하기 위해서 여러 조직을 설치하고 장비를 활용하고 있으나, 지휘체계의 문제, 소방조직의 위상 문제, 소방공무원에 대한 열악한 대우 등 여러가지 비판이 존재한다.
{{목차숨김|3}}
==김영수==
'''김영수'''는 [[2012년]] [[11월 3일]]에 [[인천광역시]] [[청천동]]에 위치한 물류창고에서 [[화재]]를 진압하다가 순직한 [[대한민국]]의 [[소방관]]이다.
그는 전날인 [[11월 2일]] 19시 16분에 현장 출동 지시가 떨어져 현장에서 화재진압을 하게 된다.
소방관 330여명과 소방차 40대가 화재 진압에 나섰지만 큰 불은 아니었다. 불은 15분 만에 진화됐다.
그러나 그는 [[2012년]] [[11월 3일]] 오전 2시52분에 숨진 채 발견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5912922 기부·봉사 앞장섰던 베테랑 소방관의 순직]
===김영수의 선행과 기부===
그와 20년을 함께 근무한 한 동료는 "젊은 시절부터 직원들 모르게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 다니며 기부와 봉사활동을 계속 했던 형님이다.
승진 욕심도 없어 부하 직원들에게 닥달 한번 안하시던 분이다. 20년 동안 화재 현장에만 있다가 지난해 뒤늦게 승진했는데…"라며 말을 잊지 못했다.
===김영수의 결혼===
다른 동료도 "홀어머니를 모시고 계속 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지난해 10월 좋은 짝을 만나 늦장가를 갔다.
결혼 후 서울에 신혼집을 차리고 인천으로 매일 출퇴근하며 재미있게 사는가 했는데 이런 변을 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영수에 대한 동료들의 평판===
김 소방위와 영종도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다른 동료는 "마당발로 불릴 정도로 인맥이 좋으신 분이었다.
동창회도 직접 조직하고 전국 곳곳에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인간관계가 좋았다. 작년에 승진도 하고 결혼도 해서 잘 풀릴 거라고 다들 생각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영수의 종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김 소방위는 아내와 함께 해외로 성지 순례를 떠날 계획도 잡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 1주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화마와 싸우려고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가 변을 당했다.
===김영수에 대한 영결식=== 김 소방위의 부인은 사고 소식을 듣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가족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은 부인은 고인의 영정 사진이 빈소로 들어오자 오열했다.
조문을 위해 장례식장을 방문한 부평소방서장에게 "왜 이렇게 늦게 시신을 찾았느냐"며 울음을 토해냈다.
===김영수에 대한 특진===
소방 당국은 유족과 장례 절차를 논의하는 한편 고인을 소방경으로 1계급 특진 추서하게 된다.
또 행정안전부와 협의해 옥조근정훈장을 수여하고 국립묘지 안장과 국가유공자 지정을 추진하게 된다.
김영수의 영결식은 오는 [[2012년]] [[11월 5일]] 오전 9시 부평소방서에서 소방서장으로 엄수된다.
 
==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