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정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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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경주 정씨(慶州 鄭氏)의 시조 [[지백호]](智伯虎)는 삼한시대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의 하나인 진지부(珍支部) 촌장으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개국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었고, 32년(유리왕 9)에 진지부가 본피부(本彼部)로 개칭되면서 낙랑후(樂浪侯)에 봉해지면서 정씨라는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또한 516년(법흥왕 3)에 문화(文和)로 시호(諡號)되었고, 658년(무열왕 3)에 감문왕(甘文王)에 추봉되었다. 경주 정씨는 그 5세손 정동충(鄭東沖)이 정씨로 사성(賜姓)된 데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경주정씨족보(慶州鄭氏族譜)》는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하고 있다.
지백호(智伯虎)의 42세손인 중시조 문정공(文正公) 정진후(鄭珍厚)는 고려 때 문과에 합격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군기시윤(軍器寺尹)과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지면서 경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지백호(智伯虎)의 42세손인 중시조 문정공(文正公) '''정진후'''(鄭珍厚)는 고려 때 문과에 합격하여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병부상서(兵部尙書) 겸 군기시윤(軍器寺尹)과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지면서 경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 분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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