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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가족을 잃고 불교에 귀의하자 [[성리학]]자이기도 한 그는 조선이 [[유교]]국가임을 주장하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세종이 궐내에 내불당을 설치하고 태종 때 억울한 사람들의 명복을 빌어준다고 하자, 그는 세종을 설득하였다. 그러나 설득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번에는 [[집현전]] 학사들 일일이 찾아다니며 불교 귀의를 반대하였다.
 
그는 평소 하인이나 노비에는 관대했으나 중요 직책의 사람들에게는 엄하게 대하였으며 {{모호|자식에자식에게 절하기로절을 술버릇하여 술버릇을 가르쳤다.}} 또한 [[김종서 (1383년)|김종서]]의 장수로서의 재질을 알아본 그는 김종서의 사소한 잘못도 엄격하게 혼냈다. 그 뒤 김종서를 병조판서로 천거한 뒤 자신의 후임자로 추천하기도 했다.
 
===예악의 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