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항공함대 (일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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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항공모함 기동부대===
[[1941년]] [[4월 10일]], [[나구모 주이치]] 해군 중장을 사령관으로 편성(함대 참모장은 [[구사카 류노스케]] 소장)되었다. [[제1항공전대]] [[일본 항공모함 아카기|아카기]]’(赤城), [[일본 항공모함 가가|가가]]’(加賀), [[제2항공전대]] 항공모함 [[일본 항공모함 히류|히류]](飛龍), [[일본 항공모함 소류|소류]](蒼龍)를 근간으로 했지만,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제5항공전대]] [[일본 항공모함 쇼카쿠|쇼카쿠]](翔鶴), [[일본 항공모함 즈이카쿠|즈이카쿠]](瑞鶴)가 편입되었다.
 
각 항공전대에 포함된 구식 구축함을 제외하고 항공모함으로만 편제했기 때문에 군대 구분에 따라 [[제1함대]]와 [[제2함대]]에서 임시 배속된 호위함정을 수반하게 되었고, 하나의 기동 부대로 제도화되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나구모 장관은 마지막까지 부대로서의 생각 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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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카 류노스케]] 참모장은 한칼에 주도한 계획을 보내 즉시 실행하면, 다른 적을 두게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나구모 주이치]] 장관은 항공에 관해서는 정통하지 못했고, 구사카 참모장도 [[겐다 미노루]] 항공참모를 평가하는 계획만을 세우고 있었으며, ‘겐다 함대’라고 칭하는 말까지 있었다. 겐다 참모는 기존 소속함에서 열린 항공대의 지휘와 훈련을 기종별로 나눈 공중 지휘로 변경했다. 또한 선제 기습을 위해 적을 마주하는 작전 중 은밀한 행동을 중시하면서, 항공모함을 집중 운용하고 공격대의 공중 집합도 쉽게 하여 전투기와 대공포도 집중시켰다.
 
[[19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는 [[하와이]]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의 전함 4척을 격침시키고, 2척을 대파시켜 미국 [[태평양 함대]]를 행동 불능으로 만드는 큰 전과를 올렸다. 직후 남하를 해서 [[뉴기니]], [[호주]], [[인도양]]을 돌아다니며 연합군의 주요 근거지를 전멸시키며 대항해를 했다. 라바울, 카비엔 공략을 지원하고, 다윈 공격, 자바해 소탕전 등에서 활약하면서 태평양의 제공권을 얻게 되었다.

[[1942년]] 4월 함대 편제 개정으로 예하 부대로 여러 전대([[경순양함]] ‘나가라’와‘나가라’(長良)와 구축함 12척)가 신설되어 고유 편제의 호위 함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좌초 사고를 일으킨 [[일본 항공모함 가가|가가]]’를 제외한 다섯 척의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인도양]]으로 진출했다. [[실론 해전]]에서 빼어난 명중률을 보인 급강하 폭격으로 항공모함 [[HMS 허미즈 (95)|HMS 허미즈]]’를 격침시킨 후 기타 다수를 격침시키고, [[트링코말리]] 항구를 폭격하는 전과를 올렸다.
 
인도양 작전까지 안정적으로 총471기 격추하고 손실은 1/10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며, 함정은 한 척의 피해도 없었다. 사상 유례없는 연속적인 승리를 기록한 제1항공 함대는 세계 최강의 기동 부대가 되었지만, 연전연승으로 인한 피로와 자만심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