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런스 올리비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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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활약한 올리비에는 [[1922년]] 스트랫퍼드 극장에서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페트루키오'역으로 첫 무대를 밟았다. [[1926년]]에서 [[1928년]]까지는 [[버밍엄 극단]]에서 일했으며, [[1935년]] 마침내 [[존 길구드]]와 함께 [[올드빅]]에 참여, 극단의 중심인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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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뛰어난 외모 뿐 아니라 20세기가 낳은 최초·최고의 소리라 일컬어질 정도의 뛰어난 발성 등으로 영국 남우(男優) 일인자가 되었는데,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올리비에가 거치지 않은 작품이 없을 정도로 [[셰익스피어]] [[연극]]을 위해 태어난 배우 같았다고 한다. 고전극뿐 아니라 현대극·영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기생활을 한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영국 해군]]에 [[중사 (군사)|중사]] 계급으로 종군하였고 전후에는 파괴된 올드빅의 책임자로서 영국 연극 부흥에 전력을 기울여, 그 공로로 [[1947년]] 기사작위에 서임되었다. 그가 제작·주연·감독한 셰익스피어의 《[[햄릿 (영화)|햄릿]]》, 《[[헨리 5세]]》, 《[[리처드 3세]]》 , 《[[오셀로 (영화)|오셀로]]》 등은 너무도 유명하며, [[소설]] [[원작]]을 각색한 영화 《[[폭풍의 언덕 (영화)|폭풍의 언덕]]》([[1940년]])에서는 히스클리프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