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프 푸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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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oseph Fouche.jpg|thumb|조제프 푸셰]]
'''조제프 푸셰'''(Joseph Fouche, [[1759년]]5월 30일 ~ [[1820년]])는 [[프랑스]]의 [[정치가]]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를 몰락 시키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붕괴시킨 제1의 배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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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혁명시기 ==
 
[[프랑스 혁명]] 때에 그는 고향 낭트에 새로 문을 연 혁명클럽 '헌법의 벗 협회' 다시 말해 [[자코뱅 클럽]] 지부에 들어가 곧 그곳의 대표자가 되었다. 그 곳에서 그는 온건한 행보로 시민들의 신용을 얻었다.
프랑스 혁명이 성공하고 국왕 루이 16세를 몰아낸후 그는 고향 낭트에서 국민공회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때 옛 친구 로베스피에르가 산악파(자코뱅파)로 의사당의 좌파에 앉았다면 그는 오른쪽인 [[지롱드파]]에 앉았다. 1793년 1월16일 저녁 국민공회 안에서는 루이 16세의 구명이냐 사형이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로베스피에르는 단호하게 사형을 주장했고 양측의 표가 팽팽하게 엇갈렸다. 이 때 푸셰를 뽑아준 낭트 선거구민의 온건한 견해를 볼때 푸셰는 왕의 구명에 표를 던져야 했으나 그는 연단에 국왕의 사형에 투표했다. 투표 결과는 387대 334로 사형이 선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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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고명섭《광기와 천재)》(인물과사상) p115~128</ref>
 
== 테르미도르의 반란==
리옹 사건에 당황한 로베스피에르는 공안위원회를 압박해 푸셰에게 리옹 사건을 해명하도록 했다. 푸셰는 로베스피에르에게 편지를 보내 처형을 면했다. 이후 푸셰는 [[기독교]]를 없애려는 문제로 프랑스 섭정 및 공안위원장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와 맞서면서 [[1794년]] [[테르미도르의 반동|테르미도르의 반란]]을 계획하였다. [[1794년]] 쿠데타를 일으켜 [[프랑스]] [[집정관]] 겸 [[공안위원회 (프랑스 혁명)|공안위원장]]이었던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로베스피에르]]를 축출하고 자신이 [[프랑스]] [[집정관]]이 되었다. 로베르피에르의 처형 이후 프랑스 혁명은 무너지고 반동의 물결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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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보기 ==
* [[나폴레옹 1세]]
*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 [[리옹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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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세계대백과}}
 
{{토막글|정치인}}
{{생애|1759|1820|푸셰, 조제프}}
{{Authority contr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