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바뀜

1 바이트 추가됨 ,  3년 전
== 구분 ==
[[파일:Peace symbol.svg|204px|thumb|[[평화 기호]](☮)는 핵무기 반대 마크이지만 평화의 마크로 더 많이 사용된다.]]
[[요한 갈퉁]]({{llang|no|Johan Galtung}}, 1930년 ~ , [[노르웨이]]의 평화학자)은 그의 저서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ref>요한 갈퉁, 강종일 외 역,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들녘, 2000 </ref>에서 평화를 직접적인 폭력이 없는 상태인 소극적 평화와 갈등을 비폭력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적극적 평화로 구분하였다. 다만, 비정상들의 카카오톡 단체 방에서는 평화를 "시끌벅쩍하고 한놈 ㅄ만드는 에프소드가 일어나는게 평화"라고 정의 내렸다.
다만, 비정상들의 카카오톡 단체 방에서는 평화를 "시끌벅쩍하고 한놈 ㅄ만드는 에프소드가 일어나는게 평화"라고 정의 내렸다.
=== 소극적 평화 ===
전통적 의미에서 평화는 ‘전쟁의 부재’, ‘세력의 균형' 상태로 설명된다. 인류 역사상 평화의 시기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거나, 극히 짧았다([[30년 전쟁]], [[100년 전쟁]], 그리고 소소한 수많은 [[전쟁]]을 고려해 보았을 때). 그러므로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려면 타인으로부터 공격당하지 않기 위한 전쟁 억지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소극적 평화는 강자가 [[폭력]]으로 약자를 억누름으로써 유지되는 평화, [[비판]]적으로 말한다면 평화유지를 명분으로 약자의 저항을 억누르는 폭력(''Pax Romana'', ''Pax Americana'')이 소극적 평화이다. 그래서 [[비폭력주의]] 교회의 하나인 [[후터라이트]]교회의 장로인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는 소극적 평화는 약자의 [[목]]을 조르면서 "조용히 해. 평화를!"이라고 윽박지르는 가짜 평화라고 비판했다.<ref name="아놀드">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이진권 역, 《평화주의자 예수》, 샨티, 2006년, ISBN 89-91075-32-0 </ref>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