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마르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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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에는 자신이 머무르는 현재의 중국은 불법을 구해 유통시킬 때가 아니라고 느낀 파라마르타는 남지나해를 거쳐 인도로 돌아가려 했지만 실패하고 광저우에 남아, 자사(刺史)의 요청으로 다시 불경 번역에 종사하였고, 강경(講経) ・ 강론(講論)에도 힘썼다. 파라마르타가 죽기 1년 전, 파라마르타에게 귀의한 제자들이 건강으로 돌아올는 것을 당시 건강의 승려들 사이에서는 그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잇따랐고,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 주요 번역서번역 ==
파라마르타 번역 불경의 특색은 불교 교리를 대중에 가르치는 것과 불경을 번역하는 것 사이의 표리일체로, 내용을 상세히 번역한 경전에 대중에 대한 강론용으로 「의소」(義疏)나 「주기」(注記)가 더해졌다. 그러나 파라마르타 생전에는 중국에서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각지를 떠돌면서 번역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가 번역한 불경이 온전히 보존되기는 어려웠고, 더욱이 파라마르타가 입적한 뒤 남조 마지막 왕조였던 진 왕조가 [[수나라|수]](隋)에 멸망당하면서 이러한 사정은 더욱 심화되었다. 파라마르타가 번역한 불경 및 경론은 다음과 같다.
 
* 《십칠지론》(十七地論)
* 《[[전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