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수 (작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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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 행적 ===
[[1940년]]부터 [[1945년]] 사이에 동시 두 편, 자유시 한 편, 수필 두 편 모두 다섯 편의 친일 작품을 조선금용조합연합회 기관지 《반도의 빛 (半島の光)》에 발표했다. 1942년 8월에 실린 친일 동시 《지원병을 보내며》<ref>[http://www.leewonsu.co.kr/04/05_03.asp 이원수문학관]</ref> 에서는 일본이 벌인 [[태평양 전쟁]]에 참전할 지원병을 위해 후방에서 병역봉공을 다해야 한다고 표현했으며, 자유시에서는 농민시 형식을 빌려 농업보국에 정성을 쏟아 총후봉공의 완수를, 수필에서는 편지글 형식을 써서 어린이들이 하루바삐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이 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노력해야 함을 강하게 주장했다.<ref>{{저널 인용
| 저자 =박태일
| 연도 = 2003
| 제목 = 이원수의 부왜문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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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그는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선정되었다.
 
{{출처|날짜=2015-4-2|이와 관련하여 [[이오덕]]은 해방 이후의 이원수의 삶의 태도로 미루어 일제 말기에 한때 저질렀던 그 친일 행적을 뼈아프게 뉘우쳤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하였다.}}
 
== 주요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