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왕 (백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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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 [[백제]]전에는 「昌死, 子余宣立, 死, 子餘璋立.」, 즉 '창([[백제 위덕왕]])의 아들은 선([[백제 법왕]]), 선의 아들은 장([[백제 무왕]])'이라고 쓰여 있고, 혜왕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일본서기]]》에는 흠명 천황([[긴메이 천황]]) 16년([[555년]]) 2월에 [[부여명농|백제 성왕]]이 사망한 것을 알리기 위해서 창([[백제 위덕왕]])이 보낸 사자(使者)로서 혜왕의 이름이 나오는데, [[백제 위덕왕]]의 남동생이라고 적고 있다. [[아좌태자]]([[백제 위덕왕|위덕왕]]의 아들로 추정)가 [[598년]] 11월에 사망하고 [[백제 위덕왕|위덕왕]]이 같은 해 12월에 사망하자, 혜왕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 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일본 《[[신찬성씨록]]》은 혜왕의 후손이 일본으로 건너가 백제조신(百濟朝臣)의 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백제조신의 집안에서 그를 시조로 받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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