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중립 필요 틀이 문서 전반에 적용되므로 중립 필요 문단 틀을 제거합니다.
Bemeella (토론 | 기여)
한일합병은 맞지않는 단어
태그: m 모바일 웹
41번째 줄:
'''이봉의'''(李鳳儀, [[1839년]] [[음력 2월 14일]] ~ [[1919년]] [[양력]] [[3월 13일]])는 [[조선]]말기의 무신, 관료이자 [[대한제국]]의 무신, 군인으로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全州)이며 초명은 지겸(志謙), 자는 선익(善翼), 호는 송부(松阜)이다. [[1854년]](철종 5년) [[음서 제도|음보]]로 선전관에 임명된 뒤 지방관으로 재직 중 [[무과]] 급제 후 [[훈련대장]], [[어영대장]], [[포도대장]] 등을 지내고 [[돈령부]][[판사]]에 이르렀으며 군직으로는 육군 참장과 육군 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완성군에 봉군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귀족 작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병석에 누워있고 아들이 그의 친구 [[한규설]]에게 찾아가 [[한일합방한일병탄]] 때 주는 관작을 받아야 되느냐고 물었을 때, 나라에서 주는 것이니 그냥 받으라 하고, 자신은 작위를 사퇴하였다. 이 일로 [[한규설]] 집안과 절교하게 된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고, [[2006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일제 강점기]] 초기의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에 수록되었으나, [[194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승학]]이 선정한 반민족행위자 명단에는 수록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