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회담 (1954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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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제네바 조약|베트남과 한반도에 대한 협정}}
'''제네바 협정'''(1954년 4월 26일 ~ 7월 21일)은 2가지 임무를 띈 협정이었다. 첫째는 한반도의 통일 문제에 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평화 유지의 가능성에 대한 토의였다. <ref>{{cite journal저널 인용|title=Indochina - Midway in the Geneva Conference: Address by the Secretary of State |date=May 7, 1954 |journal=[[:en:valon Project|Avalon Project]] |publisher=[[예일 법학대학원]] |url=http://avalon.law.yale.edu/20th_century/inch022.asp |accessdate=29 April 2010}}</ref> [[소련]], [[미국]], [[프랑스]], [[영국]], [[중화인민공화국]]은 회의 전체에 참가하였고, 2가지 문제에 관련된 그 밖의 다양한 나라들이 각 문제의 토론에 참가하였다. <ref name="The Geneva Conference">{{cite web 인용|title=The Geneva Conference |date=2000-11-17 |publisher=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url=http://www.fmprc.gov.cn/eng/ziliao/3602/3604/t18033.htm |accessdate=29 April 2010}}</ref> 이 나라들은 유엔을 통해 한국전쟁 때 파병한 나라들과 [[프랑스]]와 [[비엣민]] 간의 [[인도차이나 전쟁]]을 종식한 여러 나라들이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회의는 어떠한 선언이나 제안도 채택하지 않은 채 종결되었다. 일부 참가국들과 비평가들은 미국이 통일에 대해 주춤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비난한다.<ref name="The Geneva Conference"/><ref name="Hart-Landsberg 1998 133–138">{{cite book서적 인용|last=Hart-Landsberg |first=Martin |title=Korea: Division, Reunification, & U.S. Foreign Policy |year=1998 |publisher=Monthly Review Press |pages=133–138}}</ref><ref name="Halliday">{{cite book서적 인용|last=Halliday |first=Jon |authorlink= |last2=Cumings |first2=Bruce |authorlink2=Bruce Cumings |title=Korea, The Unknown War |year=1988 |publisher=[[:en:Pantheon Books|Pantheon Books]] |page=211 The Canadian representative, Ronning said: The communists had come to Geneva to negotiate....I thought I had come to participate in a peace conference....Instead, the emphasis was entirely on preventing a peace settlement from being realized....There was no excuse for closing the conference without a peace agreement. Molotov's resolution....could have been accepted as a basis for a settlement by most of the Sixteen [states that fought under the UN flag].}}</ref>인도차이나 문제의 경우, 이 회의체는 '''제네바 합의'''라 불리는 일련의 문서를 만들어냈다. 이 합의들에 의하여 베트남은 2개로 분단되게 된다. 북부 지역은 비엣민이 통치하고, 남쪽 지역은 전 황제 [[바오 다이]]를 수장으로 하는 [[베트남국]]이 통치하게 된 것이다. 회의체의 영국인 의장에 의하여 선언된 "회의 최종 선언"은 통일된 베트남을 수립하기 위하여 1956년 7월 이내에 보통선거를 진행할 것을 규정하였다. 남베트남이나 미국의 대표들은 컨센서스로 제출된 이 문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제네바 정치회의에 참가한 미국 등의 유엔 참전국들은 과거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이뤄진 모든 유엔 결의, 예컨대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 실시 원칙 등이 유효하며, 제네바 정치회의의 어떠한 결정도 다른 유엔 결의를 위배해서는 안 된다고 합의했다. 정치회의 개최와 관련해 제일 먼저 겪은 진통은 소련의 참가자격이었다. 공산측은 중립국 자격을 주장했지만, 유엔군측은 정치회의는 ‘참전국 쌍방’의 대표 간 회의이므로 중립국 자격은 있을 수 없다고 응수했다. 소련은 법적으로는 교전국이 아니었지만, 실제로는 전쟁 중 공산 측에 필요한 모든 무기와 탄약을 공급한 바 있고 심지어 공군 전투기까지 파견한 실질적인 교전국이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유엔군 측이 소련을 ‘특별초청’하는 형식으로 해결했다. <ref>{{뉴스 인용 |url=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8/02/12/200802120500004/200802120500004_1.html |제목=6·25 참전국 모두 모여 만든 ‘유일한 국제공인 통일원칙’ |작품명=신동아 |출판사= 동아일보사 | 작성일자 = 2008-2-1 }}</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