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바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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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구단 =
|등번호 =
|선수 사진 파일명 = Randy Bass in Hanshin Umeda IMG 2878 20131222.JPG
|사진 사이즈 = 250
|사진 설명 = 랜디 바스(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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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입단 연도 = [[1972년]]
|드래프트 순위 = 7순위
|첫 출장 = MLB / [[1977년]] [[9월 3일]]<br />NPB / [[1983년]] [[4월 16일]]
|마지막 경기 = MLB / [[1982년]] [[6월 7일]]<br /> NPB / [[1988년]] [[5월 5일]]
|획득 타이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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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
그 해에는 [[가케후 마사유키]], [[오카다 아키노부]]와 강력한 [[클린업 타자|클린업 타선]]을 형성, 같은 해 4월 17일 요미우리전에서 [[마키하라 히로미]]로부터 ‘[[백 스크린 3연발]]’중 1개가 바스의 시즌 제1호 홈런이다. 이 해에는 타율 3할 5푼, 54홈런, 134타점의 성적을 남기며 타격 부문 3관왕을 달성했고 한신의 21년 만에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또, [[센트럴 리그]]에서는 최초로 외국인 선수에 의한 [[일본 프로 야구 최다 홈런|홈런왕]]이 됐다. 같은 [[미네소타 트윈스]] 출신의 [[찰리 매뉴엘]]이 보유하고 있던 외국인 등록 선수의 시즌 최다 홈런 기록 48개와 타이 기록에서부터 54호까지의 기록 일지는 다음과 같다.
 
* 10월 8일 : [[다카노 히카루]]로부터 우익 방향에 48호 2점 홈런([[한신 고시엔 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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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0일 : 시즌 16승째를 올려 [[일본 프로 야구 최다 승리|다승왕]]이 확실되는 [[고마쓰 다쓰오]]로부터 좌측 폴대에 54호 2점 홈런([[나고야 구장]])
 
이 해에 [[오 사다하루]]가 1964년에 기록한 시즌 55호 홈런을 경신할지 주목됐지만 54개째를 친 단계에서 남은 경기 수는 2경기가 됐다. 모두 요미우리전이며 그 감독은 오 사다하루였다. 첫 경기(10월 22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선발로 등판한 [[에가와 스구루]]는 3 타석 스트라이크로 승부하여 1안타로 막았지만, 다른 투수들은 사실상의 [[고의 사구]]를 주며 바스와의 대결을 피했다. 최종전(24일, [[고라쿠엔 구장]])의 1, 2, 4, 5타석은 스트레이트 볼넷, 세 번째 타석은 선발 [[사이토 마사키]]가 방망이가 닿는 곳으로 던진 초구를 아웃코너 높은 볼에 날아가도록 중견수 앞 단타를 때려내 결국 1타수 1안타 볼넷 4개로 기록은 달성하지 못했다. 다음날 [[호치 신문]]은 ‘바스 기록 달성 실패’라는 헤드라인과 “자신은 바스에게 고의 사구를 지시하지 않았다”라는 오 사다하루의 발언도 함께 게재됐다. 당시 요미우리에서 소속된 외국인 투수 [[키스 콤스톡]]은 그 후 자신의 저서에서 이 일을 되돌아 보며 “바스에게 스트라이크를 던지면 1구당 벌금 1,000달러가 부과됐었다”라고 밝혔는데 그 지시를 내린 것은 투수 코치로 밝혀졌다.<ref>[http://www.japantimes.co.jp/sports/2008/10/31/sports/equaling-ohs-hr-record-proved-difficult/ Equaling Oh’s HR record proved difficult] - The Japan Times</ref><ref>‘한신 전선의 3연발 트리오 바스, 가케후, 오카다 꿰뚫기 SP!’에서 마키하라 히로미와의 대화 중에서 - TBS 《S☆1 J스포》, 2009년 7월 12일 방영</ref> 당시 바스는 최종전을 앞두고 “기록 달성은 무리일 것이며 나는 외국인이니까”라고 말했다.
 
한편, 이 고의 사구 공격의 영향으로 바스의 [[출루율]]이 상승했고 전날까지 9리 차이로 1위였던 [[요시무라 사다아키]](당일 4타석에서 출루는 없었음)를 마지막 타석에서 .0005차로 따돌리고 바스는 [[일본 프로 야구 최고 출루율|최고 출루율]] 타이틀도 석권하였지만 요미우리 벤치는 이 기록을 잊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바스는 당시 타격 부문 타이틀이었던 [[승리 타점|최다 승리 타점]]과 함께 타격 부문 5관왕을 달성했다. 참고로 바스는 기록을 두려워 하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를 펼쳤던 에가와를 높이 평가하고 “현재 일본 프로 야구 투수 가운데 최고의 투수다. 메이저 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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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
새 스트라이크 존이 도입된 1986년 4월, 개막 경기인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전에서는 5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으나 8경기째에는 타율이 3할 대에 이르렀고, 5월에는 6경기 연속 멀티 안타를 기록하는 등 5월 하순부터 6월에 걸쳐 16타수 12안타로 타율 3할 6푼 9리에 올랐다. 5월 31일에는 그 해 처음으로 수위 타자로 나섰고 그 이후로는 물러나는 일 없이 타율을 한층 더 높이다가 7월 2일의 다이요전에서 5타수 4안타를 때려내 타율을 4할 2리까지 끌어올렸다.
 
7월 8일에 4할 7리를 기록하여 정점에 달한 이래 주니치의 [[고마쓰 다쓰오]]한테 4타수 무안타로 제압당해 타율이 4할 이하로 떨어졌고 그 후 25타수 무안타라는 극도의 슬럼프에 빠져 3할 7푼 6리로 낮아졌다가 8월에 들어간 12일에 3할 9푼 9리까지 다시 회복됐다. 8월 이후로는 각 경기 종료 시점에서 타율 4할을 넘어서는 일은 없었지만 8월에는 3할 9푼 이하로 낮아진 적도 없었다. 9월 3일과 19일에는 3할 8푼 9리로 약간 떨어지기도 했지만 9월 종료 시점에는 3할 9푼 4리로 높아졌다. 10월에도 타율 4할 대로 기록될 가능성은 남아 있었으나 7일의 다이요전과 이어지는 히로시마전에서 무안타를 기록해 3할 8푼 8리로 떨어졌다가 14일의 최종전인 다이요전에서 2타수 2안타를 때려내 3할 8푼 9리로 타율 부문의 일본 프로 야구 기록을 경신했다.<ref>여기까지의 기술과 출처는 《일본 프로 야구 기록 대감》(우사미 데쓰야 저, [[고단샤]], p.274 ~ 275) 중에서의 일부분이다.</ref> 그 외에도 47홈런, 109타점 등의 성적을 올려 [[지바 롯데 마린스|롯데 오리온스]]의 [[오치아이 히로미쓰]]와 함께 2년 연속 타격 부문 3관왕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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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는 규정 타석에 도달한 이후 지금까지 [[장훈|하리모토 이사오]]가 보유하고 있던 시즌 타율 3할 8푼 3리라는 일본 기록을 넘어서면 일본 투수들이 더 이상 승부를 걸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감독에게 직접 호소해 이후 경기들은 출전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결국 타율이 그 이하를 기록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마지막까지 계속 타석에 섰다. 2013년 시즌 종료 기준으로 한신에서는 더 이상 홈런왕이 나오지 않고 있다.
 
또, 32세의 바스는 일본 구장에서는 좌측 방향에 서도 홈런을 날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좌익 방향으로의 홈런을 양산해 그 해 6월 26일에는 오 사다하루와 나란히 7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일본 타이 기록을 달성했다. 6월 18에는 다카노 히카루한테서 좌익 방향으로의 16호 솔로 홈런(한신 고시엔 구장), 19일 아라키 다이스케로부터 우익 방향에 17호 2점 홈런(한신 고시엔 구장), 20일 [[가쿠 겐지]]로부터 좌익 폴대에 18호 2점 홈런(한신 고시엔 구장), 21일 [[스즈키 다카마사]]로부터 좌익 방향에 19호 솔로 홈런(한신 고시엔 구장), 22일 [[히라누마 사다하루]]한테서 때려낸 몸쪽 포크를 좌익 방향에 20호 2점 홈런(한신 고시엔 구장), 24일은 신인 [[구와타 마스미]]가 던진 시속 114km/h의 한가운데 높은 커브를 백 스크린 우측 방향에 21호 2점 홈런([[고라쿠엔 구장]]) 등을 때려냈다.
 
일본 타이 기록을 달성한 26일에는 5대 5 상황에서 맞은 8회초에 120개 이상의 공을 던진 [[에가와 스구루]]를 상대로 타석 2구째에 날아온 시속 136km/h의 한가운데 높은 몸쪽 직구를 고라쿠엔 구장의 우익 장외에 있는 낚시용품점 지붕까지 날려보냈는데 이 홈런은 비거리가 약 150m에 달하는 결승 22호 솔로 홈런이었다(통산 138호). 이 때는 기록을 달성한 바스 뿐만 아니라 이 경기에서 바스에게 던진 12구 중에서 11구를 직구로 던져 정면승부를 걸었던 에가와한테도 찬사가 쏟아졌다. 당시 에가와 말고도 바스한테 정면 승부로 도전장을 내밀었던 투수로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쓰다 쓰네미]]가 있는데 그는 바스에게 모두 시속 150km/h가 넘는 스트레이트로만 승부를 걸어 3구 삼진으로 잡은 적도 있었다. 그 경기를 마친 후 쓰다에 대해 바스는 “쓰다는 미쳤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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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던 이유로는 그가 상대하기 버거워했던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일본에는 적었다는 점과 일본에 적응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만 [[일본어]]는 전혀 배우려 들지 않았고, 원정 경기 때는 팀 동료와 별도의 고급 호텔에서 숙박하곤 했다. 또 갯바람이 거센 한신 고시엔 구장의 대책으로 [[가케후 마사유키]]가 익혔던 독특한 흘려치기 타법을 전수받은 것도 바스의 타격폭을 넓혀 주면서 타격 전의 파워와 맞물려 경이적인 성적을 남기게 됐다. 좁은 구장이나 왼쪽 방향으로 강풍이 부는 곳에서는 가볍게 흘려치기만 해도 왼쪽 스탠드로 날아가는 홈런이 나올 정도였다. [[1985년 일본 시리즈]] 1차전과 2차전에서 때려낸 홈런 등은 그 전형이다. 덧붙이자면 메이저 리그 시절에는 바스의 스윙 파워를 가리켜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공을 날리는 남자”라는 말까지 있었다.
 
그 밖에 [[나가사키 게이이치|나가사키 게이지]]의 타격을 철저하게 연구했는데 나가사키가 일본 시리즈 5차전과 6차전에서 때린 홈런을 가리켜 “내 홈런은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슬쩍 묻어갔을 뿐이다. 그 점에서 나가사키의 홈런은 진짜였다”라고 극찬했다. 또 [[가와토 고조]]에게 여러모로 신세진 것을 두고 “지금도 가와토한테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어느 특집 방송에 출연했을 때 “3관왕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가케후 덕분이다”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규정 타석에 도달한 다섯 시즌 가운데 [[OPS]]에서 리그 1위를 기록한 것은 세 차례, 리그 2위에 오른 게 두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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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리그 베스트 나인 (1루수)}}
 
{{Authority control}}
{{기본정렬:바스, 랜디}}
 
[[분류:1954년 태어남]]
[[분류:살아있는 사람]]
[[분류:미국의 야구 선수]]
[[분류:미네소타 트윈스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