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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친정(親政)이 선포되면서 대원군이 실각하자 포도대장·훈련대장 등을 지냈다. [[1875년]] 금위대장(禁衛大將)이 되고, 훈련대장을 거쳐 [[1876년]] 지경연사, 공조판서 등을 지냈다. [[1880년]] 이조판서가 되고, 그 뒤 병조판서 등 요직을 지내면서 사대당(事大黨)의 실력자가 되었다.
 
[[1882년]] 전권대관으로 [[일본]]의 [[하나부사 요시모토]]를 접견하였으며, 전권대신이 되어 한미·한영·한독 수호 조약을 각각 체결하였다. 이 해 [[임오군란]]으로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청나라|청]]에 가서 병사를 요청함으로써 임오군란의 주동자를 색출하였으며, 또한 대원군을 청으로 납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민씨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 해 다시 진주사로 청에 가서 외교 담당 고문으로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초빙, 입국하게 하였다.

=== 생애 후반과 사망 ===
[[1883년]] [[음력 3월 17일]] 홍문관 제학이 되었고, <ref> [[1883년]]~:《[[:s:고종실록 20년 3월#3월 17일|고종실록]]》20년 3월 17일: 趙寧夏爲弘文館提學 </ref> 판리통리아문사무(辦理統理衙門事務), 독판통상사무(督辦通商事務), 도통사(都統使) 등을 거쳐 [[1883년]] 예조판서에 부임되었으나, 이듬해 [[갑신정변]] 때 살해되었다.<ref>《[[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인명사전/한 국 인 명/ㅈ/조영하|조영하]]〉</ref>
 
== 가족 관계 ==
* 고조부 : [[조엄]](趙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