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칵타니 베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영어 위키백과 참고하여 {{Authority control}} 추가
1번째 줄:
[[파일:TuluiWithQueenSorgaqtani.jpg|thumb|300px|[[툴루이]](왼쪽)와 소르칵타니]]
'''소르칵타니 베키'''({{llang|mn|{{만몽 유니코드|ᠰᠥᠯᠺᠥᠺᠲᠠᠨᠢ<br />ᠪᠡᠺᠢ}}}}, {{한자|唆魯合貼尼妃|사로합첩니 비}}, [[1192년]] ~ [[1252년]])는 칭기즈칸의 4남 [[툴루이]]의 아내이며, [[몽케 칸]], [[쿠빌라이 칸]]의 어머니이다.
 
== 생애 ==
7번째 줄:
[[징기스칸]]의 사후 [[쿠릴타이]]에서 몽골 족장들은 [[톨루이]]를 새로운 대칸으로 선출하였지만, 톨루이는 그것을 거절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그의 형 [[우구데이]]에게 양위하였다. 몽골 족장들은 막내 아들이 아버지를 계승한다는 전통에 따라 이와 같이 결정하였으나, 톨루이가 당시 가장 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톨루이]]보다 소르칵타니로부터 얻은 그의 네 아들로 이루어진 톨루이 가문 사람들은 [[몽골 제국]]의 운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의 아들은 [[몽케]]와 [[쿠빌라이]], [[아리크 부케]], [[훌라구]]이었다. 몽케는 4대 몽골 황제가 되었고, 쿠빌라이는 5대 황제가 되었다.
 
[[송나라]]를 정복한 [[쿠빌라이]] 칸은 중국을 거점으로 [[원나라]]를 세웠고, [[훌라구]] 칸은 바그다드와 다마스쿠스를 정복한 [[일 한국]]을 세웠다.
13번째 줄:
그녀의 남편 [[툴루이]]는 동몽골과 북중국을 왕국으로 하였는데 40세에 과음으로 사망하였다. 그리고 소르칵타니는 집정이되었고 [[우구데이]]는 그의 아들 [[구유크]]를 그녀와 결혼시키려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거절하고 이 결정은 몽골제국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것중의 하나로 판명되었다.
 
소르칵타니는 [[몽케 칸]]의 즉위 몇달 후인 [[1252년]] [[2월]] 몽골의 신년 축제중에 죽었다. [[시호]]는 '''현의장성황후'''(顯懿莊聖皇后)이다.
 
== 가족 관계 ==
* 남편 : [[툴루이]](拖雷)
** 장남 : [[몽케 칸|몽케]](蒙哥)
** 4남 : [[쿠빌라이 칸|쿠빌라이]](忽必烈)
** 6남 : [[훌라구]](旭烈兀)
33번째 줄:
{{원나라의 황후}}
 
{{Authority control}}
[[분류:몽골 제국]]
[[분류:1192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