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고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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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은 평량공(平凉公)에 봉해진 뒤 [[최충헌]](崔忠獻)형제가 명종을 폐하고 왕으로 추대하여 [[대관전]](大觀殿)에서 즉위하였으며 [[1198년]], [[산천비보도감]](山川裨補都監)을 두었고 [[관서]](關西) 민가의 [[안대]](安碓)를 금지하였다. 같은 해 [[만적의 난]]이 일어난 것을 비롯하여 이듬해에는 명주([[강릉]])와 동경([[경주시|경주]]), 뒤이어 [[진주]]와 [[전주]], 합주([[합천]]) 등지에서 민란이 계속 일어났다.
 
[[1199년]]에 [[최충헌]]이 문무관의 [[인사행정]](人事行政)를 도맡았는데 이로부터 모든 실권은 [[최충헌]]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같은 해에 [[수양장도감]](輸養帳都監)과 [[오가도감]](五家都監)을 두었다. [[1202년]]에 탐라([[제주도]])에서 다시 반란이 일어나자 소부소감(少府少監)인 [[장윤문]](張允文)과 [[중랑장]](中郞將) [[이당적]](李唐積)을 [[안무사]](安撫使)로 보내어 평정하였다. [[1204년]] 등창이[[최충헌]]에 심하여의해 태자에게쫓겨나자 [[고려 희종|희종]]에게 양위하였다. 시호는 경공정효(敬恭靖孝)이며 능은 [[개풍군]] 청교면에 위치한 [[양릉]](陽陵)이다.
 
== 고려 문종과의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