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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서울대학교에서 신군부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 2009년 정년직후 경제사 중심의 뉴라이트 계열과 근현대사 역사연구자 등 양자를 공히 비판하고,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사료에 입각한 연구를 진행할 것을 강조하였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2261818445&code=940100]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만이 확대되어 보도되었다. 그러나 진보 논객이나 진보매체 기자들조차 <<조선일보>> 1면에 게재된 왜곡보도된 내용만 인용할 뿐, 정작 같은날과 다음날 <<한겨례신문>>, <<경향신문>>에 실린 뉴라이트 비판기사는 외면하였다. <<오마이뉴스>>에서는 <<조선일보>>를 바탕으로 비판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게재하였고, 진보매체 기자조차 자사 뉴스보다 보수매체를 신뢰하여 마치 뉴라이트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도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한국사회에서 과연 어느 정도인가를 극단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태진 교수를 야누스로 만들어버린 기사"[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osangwon89&logNo=100063401705]
* 2010년 5월 9일 일본내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연대하여 한일양국 지식인 200여명의 이름으로 한일병합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일본정부의 과거역사 재인식과 사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 등을 주도하였다. 최종 중국 지식인까지 가담하여 1,000여명이 서명하였다. 강제병합 불법성이 일본 지식인들에 의해서 인정되자, 국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는 조선총독부의 강제동원 등을 합법적인 통치행위가 아니므로 배상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하였다. 이전에 일본과 한국의 사법부는 3심까지 모두 강제동원은 합법이라는 판결을 하였고, 강제병합이 합법이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대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0512002015]
* 뉴라이트 인사가 다수 참여한 정부 자문위원회에서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 대해서 비정상적으로 개입하여 역사학계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였다. 학계 원로학자이자 국사편찬위원장이었던 이태진은 양측을 중재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양편으로부터 모두 편향된 시각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2011년 11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발표하면서 ‘이승만 독재’, ‘5·16 군사정변’, ‘5·18 민주화운동’, ‘친일파 청산 노력’ 등을 빼고,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 ‘자유민주주의’, ‘독재화’ 등 보수 세력의 입장을 대폭 반영시켜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ref name="정운현">정운현.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55113 독재미화, 위키피디아 보고 교과서 집필?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 궤변론, 측은하다]. 오마이뉴스. 2011년 11월 14일.</ref> <ref>임지욱.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80628 MB정권의 '5.18 민주화운동 삭제'에 국민 격노]. 뷰스앤뉴스. 2011년 11월 14일.</ref> 이 때문에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미화시켜 독재 정부에 대한 긍정사관을 세우고자 노력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으나,<ref name="정운현"/> 자신은 독재정권에 반대한다고 명백히 반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