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46번째 줄:
1964-65 시즌 개막 후, 던펌린은 스코틀랜드 리그에서 강세를 보이면서 스코틀랜드 컵 결승까지 올랐으나, 퍼거슨은 세인트 존스톤과의 리그 경기에서 저조한 경기를 보여 결승전에서 출전하지 못했다. 던펌린은 결승에서 [[셀틱 FC|셀틱]]에게 3-2 패배를 당했고 그 이후, 리그 또한 1점 차로 우승에 실패하였다. 1965-66 시즌, 퍼거슨은 51경기에 출전하여 45골을 기록하였고 31골을 기록한 셀틱의 조 맥브라이드와 함께 리그 득점 랭킹 상위권에 올랐다.<ref>{{웹 인용|url=http://www.rsssf.com/tabless/scottops.html |제목=Scotland&nbsp;— List of Topscorers |출판사=Rsssf.com |작성일자=2009-06-12 |확인일자=2015-11-06}}</ref>
 
이후 퍼거슨은 당시 최고 이적료인 6만 5천 파운드에 [[레인저스 FC|레인저스]]로 이적하였다. 퍼거슨은 1969년 스코틀랜드 컵 결승을 패배를 최악의 경기로 회고하였는데,<ref name="blame">{{ 서적 인용| 제목= The Boss | 쪽 = 82 }}</ref> 당시 경기에서 퍼거슨은 [[셀틱 FC|셀틱]]의 주장인 빌리 맥닐을 전담했던 그는 마지막 골을 허용하고 말았고, 그 이후로부터 1군 대신 유소년 팀 소속으로 뛰게 되었다.<ref name="junior">{{ 서적 인용| 제목= The Boss | 쪽 = 83 }}</ref> 동생 마틴 퍼거슨에 의하면 퍼거슨은 매우 분노하며 준우승 메달을 던졌다고 밝혔다.<ref name="losersmedal">{{ 서적 인용| 제목= The Boss | 쪽 = 86 }}</ref> 또한 [[가톨릭]]을 믿던 아내 캐시와 결혼하자 [[개신교]] 팀이었던 레인저스는 퍼거슨을 차별하기 시작했다.<ref>{{ 서적 인용| 이름 = Harry | 성 = Reid | 작성일자 = 2005 | 제목 = The Final Whistle? | 출판사 = Birlinn | 쪽 = 223 | ISBN = 1841583626 }}</ref> 이후 퍼거슨은 자신의 자서전에서,<ref>{{ cite book | 제목 = Managing My Life | 쪽 = ? }}</ref> 자신이 레인저스에 입단할 때 구단에서 아내의 종교에 대해 매우 껄끄러워했기에, 부득이 구단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때문에 컵 결승전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악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그 해 10월, [[노팅엄 포레스트 FC|노팅엄 포레스트]]는 퍼거슨과 계약하길 원했으나,<ref name="signforest">{{ 서적 인용| 제목= The Boss | 쪽 = 85 }}</ref> 아내가 잉글랜드으로 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폴커크 FC|폴커크]]로 이적하였다. 입단 후 선수 겸 코치로서 활약을 하였으나 존 프렌티스 감독 부임 후 퍼거슨을 코치직에서 해임하였고, 이에 퍼거슨은 [[에어 유나이티드 FC|에어 유나이티드]]로 이적을 요구. [[1974년]] 에어 유나이티드에서 은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