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콩키스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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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koŋˈki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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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역사}}
[[파일:La rendición de Granada.jpg|220px|thumb|그라나다 함락<br />프란치스코 프라디야 오르티즈의 1882년 작품]]
'''레콘키스타레콩키스타'''({{llang|es|Reconquista}}, {{llang|pt|Reconquista|헤콩키스타}}, {{llang|ar| الاسترداد |알 이스티라다드}})는 [[718년]]부터 [[1492년]]까지, 약 7세기 반에 걸쳐서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교회|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이슬람]] 국가<ref group="주해">가톨릭 국가에서는 [[이베리아 반도]]의 무슬림을 흔히 [[무어인]]이라 불렀다.</ref> 를 축출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레콘키스타는레콩키스타는 [[에스파냐어]]와 [[포르투갈어]]로 "재정복"을 뜻하며 [[한국어]]로는 '국토 회복 운동'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는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정복에 의해 상실하였던 가톨릭 국가의 영토를 회복하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레콘키스타는레콩키스타는 보통 [[722년]] 코바동가 전투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본다. [[포르투갈]]의 레콘키스타는레콩키스타는 [[1249년]]에 [[아폰수 3세]]가 [[알가르브 지방|알가르브]]({{llang|pt|Algarve}}, {{llang|ar| الغرب}})를 점령하였을 때 완료되었다. 아폰수 3세는 "포르투갈과 알가르브의 국왕"이라는 칭호를 쓴 최초의 포르투갈 군주였다. [[1492년]]에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에스파냐 연합왕국이 마지막 남은 이슬람 점령지인 [[그라나다 주 (에스파냐)|그라나다]]를 정복하여 레콘키스타는레콩키스타는 마무리된다.
 
== 주요 연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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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4년]]: 이베리아 반도 서북부 지역이 재정복됨. 한편, 바르셀로나는 이슬람 국가에게 다시 점령됨.
* [[1130년]]: 이베리아 반도의 절반에 해당하는 북부가 재정복됨.
* [[1249년]]: [[아폰수 3세]]가 [[알가르브 지방|알가르브]]를 점령하여 포르투갈 영토의 레콘키스타가레콩키스타가 완료됨.
* [[1492년]]: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의 연합왕국인 에스파냐 왕국이 [[그라나다 주(에스파냐)|그라나다]]를 정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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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마이야 왕조는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한 시리아 지역 아랍인을 우대하는 차별 정책을 취했고 이는 내부에 여러 불만세력을 키우는 원인이 되었다.<ref>전국역사교사모임, 살아있는 세계사교과서1, 휴머니스트, 2007, 98쪽, ISBN 89-5862-070-6</ref> 이는 결국 반란으로 이어졌고 우마이야 왕조는 해체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의 뒤를 이어 [[아바스 왕조]]가 들어서자 이베리아 반도에는 살아남은 우마이야의 왕자 [[라흐만 1세]]가 [[후우마이야 왕조]]를 세웠다. 또한 북아프리카에서는 [[파티마 왕조]]가 성립되어 이슬람 세계는 분열되었다.<ref>전국역사교사모임, 살아있는 세계사교과서1, 휴머니스트, 2007, 100쪽, ISBN 89-5862-070-6</ref>
 
== 레콘키스타의레콩키스타의 시작 ==
{{참조|코바동가 전투|툴루즈 전투 (721년)|투르 전투}}
718년 무렵 [[서고트족]]의 귀족이자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영주였던 [[아스투리아스의 펠라기우스]]는 이슬람 지방 영주인 무누자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후 펠라기우스는 칸타브리아의 페테르 공작 등과 연합하여 [[코바동가 전투]]를 치른다. 이 전투는 이슬람 지방 정부에 대항한 로마 가톨릭교회 귀족의 반란에 불과하였으나 이후 이베리아 반도의 로마 가톨릭 국가 회복이라는 명분을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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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나바라 왕국}}
[[파일:Map Iberian Peninsula 1037-es.svg|250px|thumb|1037년의 이베리아 반도<br />산초 3세 사후 나바라 왕국은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남부의 초록색은 이슬람 영토로 여러 타이파국으로 분열되어 있는 모습이다]]
[[824년]] [[팜플로나]]와 남부 [[나바라 지방|나바라]]를 중심으로 [[바스크인]]들의 반란을 통해 팜플로나 왕국을 건국하였다. 뒤에 [[나바라 왕국]]으로 이름을 바꾼 이 나라는 10세기 부터 레콘키스타에레콩키스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1세기 [[산초 3세]] 대왕 대에 이르러 강대한 국가로 성장하였다. 산초 3세는 주변의 카스티야 백작령과 아라곤 백작령, 레온 왕국을 정복하여 이베리아 북부의 강자가 되었다. 산초 3세가 사망한 후 나바라 왕국의 영토는 3분 되어 장남 산초 가르시아 3세가 나바라 왕국을, 차남 페르난도 1세가 [[카스티야 왕국]]을, 그리고 서자인 라미로 1세가 [[아라곤 왕국]]을 물려받게되었다.<ref name="이강혁"/> {{Rp|65}}
 
이후 나바라 왕국은 [[나바라 지방]]의 영토를 유지한 채 레콘키스타의레콩키스타의 주도권을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 등에게 넘겨주고 약소국으로 전락하였다. 1234년 나바르 왕국은 프랑스에 복속되어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잃었다.<ref>콜린 존스, 방문숙 외 역,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시공사, 2006, 132쪽, ISBN 89-527-1623-X</ref> 이후 나바라 지방은 오랫동안 프랑스의 영토였다. 1515년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군주를 겸하고 있었던 [[페르난도 2세 (아라곤)|페르난도]]는 스스로 나바라 왕국의 군주를 선포하고 1516년 나바라 지방을 복속시켰다.<ref>토머스 모어, 황문수 역, 유토피아, 범우사, 2007, 62쪽의 각주, ISBN 89-08-01001-7</ref>
 
== 타이파 ==
{{참조|타이파|알 모라비드 왕조|알 모하드 왕조}}
 
1037년 기독교 국가와 계속되는 전쟁과 내부 반란으로 인해 [[후우마이야 왕조]]는 결국 패망하였다. 이후 [[타이파]]들이 후우마이야 왕조를 대신하였으나 오늘날의 [[모로코]]를 중심으로한 [[알 모라비드 왕조]]가 이베리아를 침공하자 복속되고 만다. 그러나 1147년 알 모라비드 왕조가 [[알 모하드 왕조]]에게 패망한 뒤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영토는 다시 [[타이파]]들에 의해 통치된다. 이후 레콘키스타레콩키스타 최후까지 남았던 타이파 통치 지역인 [[그라나다 왕국]]이 [[에스파냐]]에게 항복할 때까지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통치 지역은 크고 작은 독립적인 타이파 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 십자군과 기사단 ==
[[파일:Almohad1200.png|thumb|1200년 무렵의 이베리아 반도]]
 
애초에 레콘키스타는레콩키스타는 단순한 일련의 정복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중세 후기로 접어들자 [[기독교 세계]]에서 레콘키스타는레콩키스타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을 몰아내는 종교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론|정의로운 전쟁]]으로 여겨졌다. [[교황]]과 [[부르고뉴]]의 [[클뤼니 수도회]] 등의 종교 조직이 이슬람의 축출을 선동했으며 각지의 [[기사 (군사)|기사]]들이 "이교도"와 일전을 벌이기 위해 무장을 갖추고 모여들었다.
 
[[1064년]] [[교황 알렉산데르 2세]]는 가톨릭교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호소와 함께 [[바르바스트로]]를 함락할 것을 요구하는 교서를 반포하여 [[바르바스트로 전쟁]]을 시작하였다. 교황은 이 전쟁에 참여하는 자들에 대하여 [[대사 (가톨릭)|면벌부]]를 발급하였다. 이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제1차 십자군]]을 소집한 것보다 30년 전에 있었던 일로 사실상 [[십자군]]의 시작이었다.<ref>[http://libro.uca.edu/frontier/bishko2b.htm Study II : Fernando I and the Origins of the Leonese-Castilian Alliance With Cluny], Studies in Medieval Spanish Frontier History, 미국 중세 스페인 역사학회 홈페이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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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년 알모하드 왕조가 붕괴되고 사하라 서부에 [[마리니드 왕조]]가 세워지면서 이베리아 반도의 [[타이파]]들의 영토는 더이상 어떤 왕조에도 속하지 않는 사실상 독립적인 국가가 되었다. 한편, 이베리아 반도의 가톨릭교회 왕국은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의 세 나라가 주변을 통합하고 주요 세력이 되었다. 이들 가톨릭교회 왕국은 십자군의 일환인 기사단들과 함께 이슬람 지역에 대한 정복을 계속하였다. 1236년 이슬람 통치의 중심지였던 [[코르도바]]가 함락되었으며 1236년 지금의 [[세비야]]까지 함락되었다.
 
1348년 [[흑사병]]의 창궐과 [[모로코]]를 중심으로한 [[마리니드 왕조]]의 반격으로 레콘키스타가레콩키스타가 주춤하기도 하였으나 이미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의 영토는 [[바르셀로나]]와 [[그라나다 (에스파냐)|그라나다]] 를 중심으로 한 남쪽 지역으로 축소되어 있었다.
 
== 에스파냐의 성립과 레콘키스타의레콩키스타의 종결 ==
[[파일:Adolf Seel Innenhof der Alhambra.jpg|thumb|[[알함브라 궁전]]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최후의 이슬람 국가였던 그라나다 타이파의 궁전이다.]]
1469년 [[아라곤 왕국]]의 왕위 후계자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페르난도]]와 [[카스티야 왕국]]의 왕위 계승 후계자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이사벨]]이 결혼하여 두 나라는 공동 국왕이 지배하는 아라곤 카스티야 공동왕국이 되었다. 이후 [[에스파냐]](에스파냐)로 이름을 바꾼 공동왕국은 1478년에는 카나리아 제도를 정복하고 [[1492년]] 1월 2일, 무슬림의 마지막 보루이던 [[그라나다 (에스파냐)|그라나다]]를 정복하여 레콘키스타를레콩키스타를 종결하게 되었다.<ref name="이강혁"/> {{Rp|109}} 이로써 이베리아 반도에서 있었던 781년 간의 이슬람 통치가 종식되었다. 한편 1492년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해이기도 하다.<ref>Stanley G. Payne, [http://libro.uca.edu/payne1/payne9.htm Chapter Nine The United Spanish Monarchy], A History of Spain and Portugal</ref>
 
그라나다를 정복한 에스파냐는 [[알람브라 칙령]]을 반포하여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하지 않은 무슬림과 유대인을 추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