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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이란 말은 20세기말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근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1998년 저서 <통섭, 지식의 대통합>을 통해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사회생물학>(1975년)을 저술한 인본주의적 생물학자로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간격을 매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또한 C.P 스노우의 1959년 작 <두 문화와 과학 혁명>에서도 다루어진 바가 있다. 윌슨은 과학, 인문학과 예술이 사실은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분리된 각 학문의 세세한 부분을 체계화시키는 데에만 목적을 두지 않는다. 모든 탐구자에게 그저 보여지는 상태뿐만이 아닌 깊이 숨겨진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간단한 자연의 법칙들로 설명하고자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반대방향으로 연구하지만 오히려 [[환원주의]]에서 추구하는 것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윌슨의 제자인 이화여대의 [[최재천 (동물행동학자)|최재천교수]]가 <통섭, 지식의 대통합>을 번역하여 한국에 통섭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통섭이라는 단어는 성리학과 불교에서 이미 사용되어온 용어로 '큰 줄기를 잡다'라는 뜻을 지닌다.

한편 상지대의 최종덕 교수는 한국 의철학회에서는 통섭이 마치 학문간 동등하고 상호적이며 양방향적 관점의 합일로 오해하게 하고 있으나 원래 윌슨의 개념은 인문학이 자연과학에 흡수되는 통합을 의미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8061732131&code=960100]
또한 2006년 창립된 [[한국 의철학회]]는 의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학문과 실천과 덕성으로 구성된 의(醫)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통해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하고 학술지와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http://www.philomed.or.kr/page/page.php?p=a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