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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2세의 주요 관심사는 혼란스러운 [[교황령]]의 행정을 재정비하여 성직자들이 교황령을 통치하게 하는 것이었다. 1826년에 칙령을 발표하여 로마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게토에 살게 하고 그들의 영지를 몰수하자 많은 유대인들이 로마를 떠나 버려 교황청은 경제적인 타격을 받게 되었다. 비밀결사대들이 교황령 안에서 혁명을 유발시키고 있었으므로 출판 검열이 보다 강화되었다. 1825년에는 [[프리메이슨]]과 카르보나리를 반대하는 칙서 ''Oua gravioramala''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라벤나에서 그들에게 내린 중벌은 교황령 북부 지방에서 혁명가들을 자극하는 결과가 되었다. 재정 적자를 만회해 보려는 레오 12세의 노력은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하였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교황령에는 여러 신심 행위와 행사들이 사라져 그것을 복구시키려고 노력하였으나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였고 교황청령의 각 지역들은 독자적으로 독립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었다.
 
레오 12세는 [[유럽]]의 열강들에 대해서는 양보하는 태도를 취하여 여러 국가들과 제휴하기를 원하였으나 [[프랑스]]에 대해서는 왕정 복구와 반(反)교회적인 [[기독교]]적인 태도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에스파냐]]에 대해서는 [[아메리카]]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벨기에]]가 독립을 주장하였으므로 [[네덜란드]]에서 [[로마 가톨릭가톨릭교회]] [[개신교]]의 갈등이 심화되었으나 1827년 빌헬름 1세와 정교 협정을 맺었다. [[영국]]과 [[아일랜드]]에 대해서는 [[로마 가톨릭가톨릭교회]]의 해방이 임박하였다. 그리하여 레오 12세의 선종 후 2달 만에 로마 가톨릭 신자들도가톨릭교도들도 [[영국 성공회]] 신자들과 같이 공민권을 갖게 되었다.
 
레오 12세는 충천하는 [[자유주의]]를 억압하고 옛 통치를 꿈꾸던 통치자들과 뜻을 같이하였으므로 재위 중 많은 문제를 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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