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에렌페스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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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 Paul Ehrenfest.jpg
|birth_date = {{Birth date|1880|1|18|mf=y}}
|birth_place = {{국기|[[오스트리아-헝가리}}]] [[빈]]
|death_date = {{death date and age|1933|9|25|1880|1|18}}
|death_place = {{국기|[[네덜란드}}]] [[암스테르담]]
|fields = [[물리학]]
|workplaces = [[레이던 대학교]]
|alma_mater = [[빈 공과대학교]] <br /> [[빈 대학교]] <br /> [[괴팅겐 대학교]]
|doctoral_advisor = [[루트비히 볼츠만]]
|doctoral_students = [[헨드릭 카시미르]] <br /> [[헨드릭 안토니 크라머르스]]
|known_for = [[에렌페스트 정리]]
|awar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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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경부터 에렌페스트는 옛 지도 교수 볼츠만과 마찬가지로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1931년 5월 에렌페스트는 [[닐스 보어]]에게 편지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인용문2|이미 이론물리학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소. 더 이상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수많은 논문과 책들의 홍수 속에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소이다. 아마 난 더 이상 가망이 없는 것 같다네.<br />
I have completely lost contact with theoretical physics. I cannot read anything any more and feel myself incompetent to have even the most modest grasp about what makes sense in the flood of articles and books. Perhaps I cannot at all be helped any more.}}
1932년 8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절친한 친구인 에렌페스트의 건강이 우려돼 레이던 대학교에서 에렌페스트의 업무를 줄여 달라고 권고하였다. 에렌페스트의 막내 바시크({{llang|de|Wassik}})는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었고, [[암스테르담]]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었다. 1933년 9월 5일 에렌페스트는 이 병원에서 바시크를 총으로 쏜 뒤, 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