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평창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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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정보
|사찰 이름 = 월정사
|그림 = 월정사1.jpg
|그림 설명 = 월정사 전경
|건립 연대 =
|창건자 =
|종파 = [[대한불교조계종]]
|본존 =
|별칭 =
|문화재 =
|소재지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지도 = 대한민국
|띄움 =
|꼬리표 = 월정사
|너비 =
|대체지도 =
|설명 =
|위도도 = 37|위도분 = 43|위도초 = 537.0|남북= N
|경도도 = 128|경도분 = 35|경도초 = 33.2|동서= E
}}
 
'''월정사'''(月精寺)는 [[강원도 (남)|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五臺山) 기슭 374-8번지)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이다. 조계종의 제4교구 본사로 지정되어 있다.
 
== 역사 ==
[[신라]] [[선덕여왕]] 12년인 [[643년]]에 [[자장 율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지는 [[오대산]]의 중심 사찰이다. 자장이 중국에서 유학하던 중에 [[문수보살자장율사]] 만난중국으로 유학을 다시가서 산서성 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을 만나고자친견한다. 정진하던문수보살은 터라는자장율사에게 전설이부처님 있다정골사리와 가사, 발우를 전해주며 신라로 돌아가 경주 동북방의 오대산에서 다시 볼 것을 말했다. 신라로 돌아온 자장율사는 지금의 오대산으로 들어와 임시로 초암을 지어 머무르면서 문수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자 하였으나, 3일 동안 음산한 날씨가 계속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뒤 유동보살의 화신이라고 전하는 신효거사가 이곳에 머물며 수행했고, 범일국사의 제자였던 신의스님이 자장율사가 초암을 지었던 터에 작은 암자를 짓고 살았다. 신의스님 입적 후 이 암자는 오랫동안 황폐해졌는데 수다사의 유연스님이 다시 암자를 짓고 살면서 비로소 사격을 갖추게 되었다.
 
그 뒤 1377년(고려 충렬왕 33년) 화재로 전소된 것을 이일스님이 중창하고, 1833년(조선 순조 33년)에 다시 화재로 전소된 것을 1844년(헌종 10년) 영담, 정암 등의 스님이 나서 중건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작전상의 이유로 아군에 의해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한 10여 동의 건물이 전소되었다가 1964년에야 [[탄허]]스님이 적광전을 중건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51년 [[1·4 후퇴]] 때 절이 인민군에 점령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월턴 워커]] 미8군 사령관과 [[김백일 (1917년)|김백일]] 육군 1군 군단장이 오대산 사찰의 소각을 지시했다. 월정사도 팔각구층석탑 이외의 건물은 모두 불타 없어졌다. 몇 달 뒤 김백일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는데, 유족이 이를 사찰을 훼손한 것에 대한 업보라 여겨 이후 월정사에 그의 위패를 안치했다.<ref>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7861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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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월정사 북대 고운암 목조미륵보살좌상'''(平昌 月精寺 北臺 孤雲庵 木造彌勒菩薩坐像)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미륵보살좌상은 복장유물이 완전하게 보관되어 있어 1710년이라는 정확한 제작연대와 제작자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도 양호하며 18세기 불교조각의 기준작으로 삼을 만 하다는 점이 가치가 있다.
 
==체험 및 시설==
===템플스테이===
월정사에서는 내·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http://templestay.com/common/intro/intro_program_list.asp?t_id=woljeongsa 월정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파일:월정사2.jpg|섬네일|왼쪽|월정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파일:월정사3.jpg|섬네일|가운데|월정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 사진 ==
<gallery mode=pac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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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월정사| ]]
[[분류:대한민국의 절]]
[[분류:대한불교조계종의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