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遂西與上兵遇蘄西會甀의 遇와 會가 모두 '만나다'의 뜻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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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왕의 애첩이 의원에게 치료를 받으러 자주 다니자, 의원 곁에 사는 중대부 비혁(賁赫)이 애첩을 자주 시중해 애첩이 비혁을 회남왕에게 칭찬했다. 회남왕은 비혁이 애첩과 간통했다고 의심하고 사로잡으려 했으나, 비혁은 장안으로 달아나 고제에게 회남왕이 모반을 일으키려 한다고 고변했다. 상국 [[소하]]는 일단 비혁을 묶어두고 회남왕의 모반 혐의를 증험해야 한다고 진언했으나, 회남왕은 비혁이 자국의 기밀을 이미 흘렸고, 한나라의 사자도 이미 자신의 수상한 동태를 알아챘으리라고 여기고 마침내 비혁의 일가족을 다 죽이고 모반을 일으켰다. 소식을 들은 한 조정에서는 비혁을 풀어주고 진압군의 장수로 삼았다.<ref name="s91"/> 옛 재상 [[주건]]은 모반을 만류했으나 양보후는 모반을 일으키도록 권했다.
 
반란을 일으키고서는 우선 동쪽으로 나아가 형왕 [[유고 (형왕)|유고]]를 한 싸움에 격파해 죽이고 형나라의 군대를 모조리 빼앗아 [[화이허]]를 건너 초나라를 공격했다. 초왕 [[유교 (전한)|유교]]는 군사를 셋으로 나눠 서로 호응하게 했으나, 이 중 하나를 격파하니 나머지 두 군도 흩어져 달아났다. 서쪽으로 진격해 마침내 황제가 친히 이끄는 진압군과 기현 서쪽의 회추(甀)에서 만났다. 회남왕은 옛 [[항우]]와 비슷한 방식으로 군진을 폈는데, 고조는 이를 보고 싫어했다. 고조가 멀리서 말했다.
{{인용문2|무엇이 괴로워서 반역을 일으켰는가?}}
회남왕이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