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고에성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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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마치 시대]] 후기부터 [[간토 지방]]의 패권을 둘러싸고, [[고가쿠보]](古河公方)와 [[간토칸레]](関東管領)이 대립으로 일어난 [[쿄토쿠의 난]](享徳の乱)과 간토칸레직을 세습하던 우에스기가 내부에서도 야마우치 우에스기가(山内上杉家)와 [[사가미노쿠니|사가미]](相模), [[무사시노쿠니|무사시]](武蔵)을 기반으로 힘을 키운 서가(庶家)중 하나인 오기가야쓰 우에스기가(扇谷上杉家)와의 대립으로 일어난 [[조쿄의 난]](長享の乱)등이 있다.
 
이 혼란한 시기를 틈타 오기가야쓰 우에스기가의 영지였던 사가미를 [[호조 소운]](北条早雲)이 나타나 오기가야쓰측인 오모리씨(大森氏), 미우라씨(三浦氏)을 차례로 멸망시키면서 세력을 넓혔다. 소운의 아들 [[호조 우지쓰나]](北条氏綱)는 [[에이쇼의 난]](永正の乱)으로 고가쿠보와 간토칸레 양측이 내분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틈을 타 무사시로 진출하여 [[에도 성]](江戸城)과 오기가야쓰 우에스기가의 본거지인 가와고에성을 함락하여 오기가야쓰 우에스기가를 멸망직전까지 몰아넣었다. 우지쓰나가 병으로 사망하자, 고가쿠보, 간토칸레(야마우치 우에스기가), 오기가야쓰 우에스기가, 세가문은 동맹을 맺고 호조씨에 대한 반격을 개시한다. 일부을일부를 제외한 간토의 무사 대부분을 모아 호조 우지야스을 공격했다.
 
==전투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