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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중종]]은 [[대사헌]] [[정암 조광조|조광조]]와 우참찬 [[이자 (1480년)|이자]](李耔), 도승지 [[유인숙]](柳仁淑), 좌부승지(左副承旨) [[박세희]](朴世熹), 우부승지(右副承旨) [[홍언필]](洪彦弼)을 비롯하여 조광조파로 지목되는 많은 사람을 잡아 가두게 하였다.
 
[[홍경주]], [[김전]], [[심정 (1471년)|심정]] 등은 당장 이들을 때려죽이려 하였으나 [[병조판서]] [[이장곤]](李長坤)과 [[좌의정]] [[안당]]이 임금께 간절히 말렸고, [[영의정]] [[정광필]]은 “젊은 선비들이 현실을 모르고 옛날 제도를 그대로 인용하여 실시하고자 한 것”이라 하여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말렸는데말렸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남곤]]은 유배나 파면 선에서 해결하면 될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지만 역시 거절당한다. 이후 이장곤과 안당은 이로 인하여 옥에 갇혔다.
 
이날 [[성균관]]의 유생 천여 명이 달려와서 광화문 밖에 모여 [[정암 조광조|조광조]] 등의 억울함을 울며 호소하니 주모자 [[이약수]](李若水) 등 몇 명을 체포하자 모두 자진 포승을 지고 들어가 감옥은 가득차 있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회의에 참여한 신하들에게 서훈을 내렸지만 [[남곤]] 등은 상훈을 거절하고, 관직 사퇴를 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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