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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요|날짜=2014-03-08}}
{{인물군인 정보
|출생일= [[1569년]]
|사망지=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 쌍령
|사망일= [[1637년]]
|사망원인= 자살
|국적= {{국기나라|조선}}
|별명= 자고
|부모= 부친아버지: [[허기]], 모친어머니: 정부인정씨 부인
|직업= 무신, 경상좌병사
}}
'''허완'''(許完), [[1569년]] ~ [[1637년]])은 [[조선 중기]]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양천 허씨|양천]]이고,. 자는 자고이다.
 
== 생애 ==
[[1592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전라좌수사[[전라도|전라]][[수군절도사|좌수사]] [[이순신]]은 그를 장수의 재목이라며 우대하였다. 그는 [[이순신]]과이순신과 수군들을 도와 혁혁한 공을 세웠다.
[[1569년]],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필법에 능하였고 활쏘기, 말타기도 잘하였다.
[[1627년]]에는 경상우병사가[[경상도|경상]][[병마절도사|우병사]]가 되었고, [[1629년]]에는 회령부사를 시작으로 전라병사, 충청수사 등을 지냈다. [[1635년]]에는 경상좌병사가 되었다.
[[1592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그를 장수의 재목이라며 우대하였다. 그는 [[이순신]]과 수군들을 도와 혁혁한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중[[1636년]] [[병자호란]] 중 근왕군을 4만명을 조직해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오곽사가 이끄는 청군 300명과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쌍령에서 조우하였다. 싸움에서[[쌍령 전투]]에서 패하자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자살|자결]]하였다.
[[1627년]]에는 경상우병사가 되었고, [[1629년]]에는 회령부사를 시작으로 전라병사, 충청수사 등을 지냈다. [[1635년]]에는 경상좌병사가 되었다.
 
사후 병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장이다. 충장공 허완이라 불린다.
===전사===
{{참고|쌍령 전투}}
병자호란중 근왕군을 4만명을 조직해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오곽사가 이끄는 청군 300명과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쌍령에서 조우하였다. 싸움에서 패하자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사후==
병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장이다. 충장공 허완이라 불린다.
[[분류:1569년 태어남]]
[[분류:1637년 죽음]]
[[분류:작전자살한 중 사망자사람]]
[[분류:수군절도사]]
[[분류:병마절도사]]
[[분류:조선의 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