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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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네안데르탈인]]은 이미 죽은 자들을 매장할 때, 생전에 직접 사용했던 것을 함께 묻어주었다.<ref name="세계풍속사21">
|인용문=그러므로 죽은 자의 유해는 죽은 뒤에도 방해받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대로 두거나 또는 생전에 직접 사용했던 것을 전부 함께 묻어주었다. ... 네안데르탈인은 이미 죽은 자들에게 애정을 담아 매장할 때 그렇게 했다.}}
신석기 시대 매장식 무덤에서 시신위에 꽃이 놓여 있었던 것이 발견되어 매장 의식이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영국의 스톤헨지는 거대한 축제의 장소이자 장례 의식이 행해진 곳이었다고 한다.<ref>[https://archive.is/20120701120229/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615680 스톤헨지 관련기사]</ref>
고대 국가가 출현하면서 [[피라미드]], [[진시황릉]], [[고인돌]], [[장군총]] 등 거대한 통치자의 무덤이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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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족(士族)은 10촌(五世) 이내의 친족을 의친(懿親), 유복친(有服親)이라 하여 한 가족으로 간주했다. 종형제(從兄弟: 4촌형제)·질부(姪婦:3촌 조카며느리)의 상사(喪事)에 대공복(大功服: 9개월 상복), 종조부모(從祖父母:조부의 형제부부)·재종형제(再從兄弟: 6촌형제)·종질(從姪: 5촌조카)·종손(從孫:6촌손자)의 상사에 소공복(小功服: 5개월 상복), 종증조(從曾祖:증조부의 형제부부)·삼종형제(三從兄弟: 8촌형제)의 상사에 시마복(緦麻服: 3개월 상복)을 입었다.<ref>왕족은 지위와 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었고, 서민은 부모의 상에도 100일상을 치루는 경우가 많아 물의가 잦았다.</ref>
장례방법이 매장(埋葬)을 하던 시대에서 화장(火葬)으로 바뀌었고 유골 처리도 자연으로 돌리는 자연장이 대세이며, 화장 및 납골문화가 확산되면서 묘지 증가에 따른 국토 훼손을 막을 수 있다.<ref>[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0012810241531118 묘지로 쓰이는 국토면적은 ‘한해 여의도의 57%’2010-01-28]</ref>
=== 일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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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
이슬람의 장례는 부활 신앙에 따라 땅에 시신을 모시는 매장이다. 염(殮)을 한 시신에 수의를 입히며 무덤안의 묘실에 모시며, 관을 사용하지는 않는다.<ref>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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