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외 관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조지 워싱턴|워싱턴]]을 총 사령관으로 하는 독립군은 [[미국 독립 전쟁|독립 전쟁]] 초기에 [[영국]]군에게 일방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러나 1778년 미국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프랑스]]의 군사적 지원을 받았으며 이후 [[스페인|에스파냐]]와 [[네덜란드 공화국]]과도 동맹을 맺었다. 이후 워싱턴의 지구전 전략과 [[프랑스 왕국]] 해군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전세는 독립군에게 점점 유리해졌다. 미국의 [[대륙군]]은 1776년 ‘[[트렌턴 전투]]’와 1777년 ‘[[새러토가 전투]]’, 그리고 1781년 ‘[[요크타운 전투]]’에서 [[대영 제국]]의 군대에 승리하였다. 영국은 ‘[[요크타운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여 미국과 영국 제국은 1783년 9월 3일에 [[파리 시|프랑스 파리]]에서 〈[[파리 조약 (1783년)|파리 조약]]〉으로 평화 협정을 맺었고 [[영국]]은 [[미국의 독립|미합중국의 독립]]을 승인하게 된다. 이로서, 1783년을 양국의 국교 수립년도로 본다.
 
1784년 2월에 이미, 미국상인의 중국에 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즉, 1784년 2월 뉴욕항을 출항한 중국황제호가 성조기를 달고 8월에 광동항에 입항하였다. 그 후 미국상인들은 모피, 인삼 등을 수출하고 중국산 차, 견직물, 비단, 도자기 등을 수입하여 많은 이익을 보는 등 호황을 누렸기 때문에 미국상인들의 대(對)중국무역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ref>박일훈(朴日勳), 〈[http://www.riss.kr.eproxy.pusan.ac.kr/link?id=A82691615 조미수호통상조약연결까지의 대미관연구(朝美修好通商條約練結까지의 對美觀硏究)]〉 《부산여자전문대학 논문집 제3집》(1981년) 3~4쪽.</ref>
 
===성장과 갈등(1789-1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