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클레이데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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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2|이들<nowiki>[</nowiki>[[플라톤]]과 [[크니도스의 에우독소스]]의 제자들]보다 그리 젊지는 않은 에우클레이데스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을 집대성하여, 크니도스의 에우독소스의 여러 정리들을 정렬하였고, 테아이테토스({{llang|grc|Θεαίτητος}})의 정리들을 완성하였으며, 선대에서 막연하게 증명되었던 것들을 엄밀하게 증명하였다. 이 사람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시대에 살았는데,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바로 이후 세대인 [[아르키메데스]]가 에우클레이데스에 대해서 언급하기 때문이며, 혹자에 따르면 프톨레마이오스가 에우클레이데스에게 "[[기하학]]을 보다 쉽게 배우는 지름길은 없는가?”라고 묻자, "폐하, 기하학에는 폐하만을 위한 왕도는(王道)는 없사옵니다."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플라톤]]의 제자들 이후 사람이지만 [[에라토스테네스]]나 아르키메데스 이전의 사람이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어디에선가 에우클레이데스가 스스로와 동시대 인물이라고 기록하기 때문이다.<br/> {{lang|grc|οὐ πολὺ δὲ τούτων νεώτερός ἐστιν Εὐκλείδης ὁ τὰ στοιχεῖα συναγαγὼν καὶ πολλὰ μὲν τῶν Εὐδόξου συντάξας, πολλὰ δὲ τῶν Θεαιτήτου τελεωσάμενος, ἔτι δὲ τὰ μαλακώτερον δεικνύμενα τοῖς ἔμπροσθεν εἰς ἀνελέγκτους ἀποδείξεις ἀναγαγών. γέγονε δὲ οὗτος ὁ ἀνὴρ ἐπὶ τοῦ πρώτου Πτολεμαίου· καὶ γὰρ ὁ Ἀρχιμήδης ἐπιβαλὼν καὶ τῷ πρώτῳ μνημονεύει τοῦ Εὐκλείδου, καὶ μέντοι καί φασιν ὅτι Πτολεμαῖος ἤρετό ποτε αὐτόν, εἴ τίς ἐστιν περὶ γεωμετρίαν ὁδὸς συντομωτέρα τῆς στοιχειώσεως· ὁ δὲ ἀπεκρίνατο, μὴ εἶναι βασιλικὴν ἀτραπὸν ἐπὶ γεωμετρίαν· νεώτερος μὲν οὖν ἐστι τῶν περὶ Πλάτωνα, πρεσβύτερος δὲ Ἐρατοσθένους καὶ Αρχιμήδους. οὗτοι γὰρ σύγχρονοι ἀλλήλοις, ὥς πού φησιν Ἐρατοσθένης.}}
|[http://www.loebclassics.com/view/proclus-summary/1939/pb_LCL335.155.xml 프로클로스, 《주석이 달린 원론》]}}
여기서 에우클레이데스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 사이의 기하학의 왕도에 대한 일화는 후세의 창작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는 다른 [[고대 그리스]] [[수학자]]인 [[메나이크모스]]와 [[알렉산드로스 3세 메가스]] 사이의 일화와 유사하기 때문이다.<ref name="Boyer">{{cite book|first=Carl B.|last=Boyer|title=A History of Mathematics|판=2판|publisher=John Wiley & Sons, Inc.|날짜=1991|isbn=0-471-54397-7|언어고리언어=en}}</ref>{{rp|96}}
 
== 주요 업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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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
에우클레이데스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총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llang|grc|Στοιχεῖα|스토이케이아}})이다. [[기하학]] 원본이라고도 불린다.(원본은 [[그리스어]]로 문자라는 뜻이다.) 에우클레이데스 자신의 독창적인 내용들은 별로 없지만, 그 형태가 단순하고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당시까지 밝혀진 기하학과 [[정수론]]의 내용들을 다뤘는데, 10개밖에는 되지않는 공리들에서 465개나 되는 명제들을 유도해냈다. 내용들 중 많은 부분들이 그 이전의 [[수학자]]들에게도 이미 널리 알려졌던 것이었다. 하지만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이 [[수학사]]의 고전이 된 이유는 일정한 [[공리]]에서부터 결과를 이끌어내는 논리적인 전개였다. 공리 체계에 바탕을 둔 [[근대]] [[수학]]은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에 근원을 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은 수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의 하나로, 출판된 뒤부터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까지 수학, 특히 기하학을 가르치는데 중요한 [[교과서]]로 쓰였다.<ref>{{cite book|last=Ball|first=W.W. Rouse|authorlink=W.W. Rouse Ball|title =A Short Account of the History of Mathematics|origyear=1908|url=|edition=4판|날짜=1960|publisher=Dover Publications
|isbn=0486206300|pages=50–62|언어고리언어=en}}</ref>{{rp|50–62}}<ref name="Boyer"/>{{rp|100–119}}<ref>Macardle, et al. (2008). ''Scientists: Extraordinary People Who Altered the Course of History.'' New York: Metro Books</ref>{{rp|12}} [[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불리는 기하학의 정리들이 작은 공리로부터 출발해서 연역된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은 수백 년동안 순수한 기하학 그 자체로 여겨졌으나,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지금은 [[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불린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에 나오는 2개의 [[정수]]의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알고리즘]]은 지금도 [[유클리드 호제법]]이라고 불리며, [[소수 (수론)|소수]]의 무한성에 대한 정리 역시 오늘날에도 [[유클리드의 정리]]로 불린다. 또한, 《에우클레이데스의 원론》에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의 독창적 증명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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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Authority control}}
 
[[분류: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분류:기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