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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고종|고종]] 21년인 1884년에 대대로 왕실의 악사를 지낸 [[양근 함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함화진(咸華鎭)이었다. 함화진의 집안은 세습적인 악사 가문으로 증조부 함윤옥은 [[조선 순조|순조]]와 [[조선 헌종|헌종]] 때 악사였고, 할아버지 함제홍은 헌종 때 [[단소]]와 [[젓대]]의 명수로 불렸다. 큰아버지 함재홍은 젓대, 아버지 [[함재운]]은 [[거문고]]의 대가였다.
 
함화진은 [[이왕직 아악부]]의 수장인 제2세 아악사장을 역임한 함재운의 장자로 태어나 이병문에게서 거문고를, [[명완벽]]에게서는 [[가야금]]을 전수받았다. 전공은 거문고였으나 국악이론 부문에서도 일인자가 되었다. 10대 시절인 [[1900년]]에 가전악(假典樂)이 된 뒤 [[1901년]] 전악(典樂), [[1913년]] 아악수장, 그 뒤 아악사를 차례로 지냈다. [[1932년]]에는 아버지가 맡았던 자리인 제5세 아악사장에까지 올랐고, [[1939년]]에 은퇴했다.
 
한편 [[1912년]]부터 조선정악전습소의 가야금 교사로 재직했고, [[1931년]]부터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국악이론과 거문고, 가야금, 양금 등 실기를 가르쳤다. [[1930년대]]에는 [[편경]]과 [[편종]]을 제작하고 [[처용무]]를 재현하는 등 국악 전통의 복구와 보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일제 패망 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이왕직아악부가 사라지고 함화진을 중심으로 [[대한국악원]]이 결성되었다. 대한국악원은 아악 전통을 고수하던 구 이왕직아악부와는 달리 창악, 기악, 창극, 무용, 농악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민족음악의 수립을 목표로 했다. 대한국악원이 전국농악경연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악계 내부에서 일종의 사회참여파를 형성하면서, 이 단체를 이끈 함화진은 [[남로당]] 불법화와 [[좌익]] 세력 색출 과정에서 좌익으로 몰려 피검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아악개요》(1915), 《조선악기편》(1933), 《이조악제원류》(1933), 《증보가곡원류》(1938), 《조선음악통론》(1948) 등이 있어 국악 연구에 자주 인용된다. 유고로 《국악50년 회고록》을 남겼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국악계의 대표 격으로 [[조선문예회]], [[조선음악협회]] 등 친일성이 강한 음악인 단체에서 활동한 일이 있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인 부문에 포함되었다. 이 명단에 수록된 국악인은 함화진과 [[김기수 (국악인)|김기수]] 두 사람이다.
|저자=편집부
|제목=한국현대 예술사대계 1 (해방과 분단 고착 시기)
|발행일자날짜=1999-12-22
|출판사=시공사
|출판위치=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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