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 원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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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막부는 선상의 페리에게 우선 우라가 관청의 [[요리키]](관의 실무를 담당하는 하급 향리)인 나카지마 사부로스케를 파견하여 페리의 내항이 장군에게 미국 대통령 친서를 전달할 목적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러나 페리 측은 막부에서 파견한 요리키의 계급이 너무 낮기 때문에 친서 전달을 거부했다.
[[File:Gasshukoku suishi teitoku kōjōgaki (Oral statement by the American Navy admiral)‎.png|thumb|300px|세 배의 함장 아난, 페리 그리고 헨리 애덤스 선장을 보여주는 일본 목판화]]
 
[[7월 10일]], 우라가 관청의 요리키 카야마 에이자에몬(香山栄左衛門)이 우라가 [[봉행|부교]](奉行, 사또 정도의 벼슬)라고 칭하고 서스퀘해나 호를 찾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프랭클린 뷰캐넌]]과 [[헨리 애덤스]] 두 함장과 회견을 했다. 그들의 대응은 바뀌지 않았고, 친서는 최고위 관리에게만 전달하겠다고 말하고 쫓아냈다. 에이자에몬은 상부와 상의하기 위해 4일 동안의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지만, 페리는 3일이라면 기다리겠다고 답했고 이어 “친서를 접수할 수 있는 고위직 관리를 파견하지 않으면, 에도 만을 북상하여 군사를 이끌고 상륙하여 장군에게 직접 전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페리는 에이자에몬과 회견이 열린 [[7월 10일]] 함대 소속의 각 함에서 1척씩 무장한 단정을 파견하여 우라가 항구를 측량하게 했다. 이 측량은 막부 측에 위협을 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우라가 부교는 당연히 항의를 했다. 그러한 대답은 쇄국체제 하의 불평등한 국제관계를 배제하겠다는 생각이었으며, 일본에 대해 불평등한 국제 관계를 강요하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