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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계자 분쟁 ===
이에사다는 정실부인으로 타카츠카사 마사히로(鷹司政煕) 딸 코토코(任子)와 이치조 타다요시(一条実良)의 딸인 히데코(秀子)를 맞이했지만 두 명 모두 요절하였고,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의 양녀·[[덴쇼인]](天璋院)와의과와의 사이에도 친자식은 태어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에사다의 병이 악화된 [[1857년]](안세이 4년(1857년)에 이르러 후계자 분쟁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어 나타나게 된다.
 
이에사다의 후계자 후보로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 등이 추천하는 [[기이 국|키이]] 가문의 토쿠가와 요시토미([[도쿠가와 이에모치]])를 내세우는 키슈派와 [[시마즈 나리아키라]], [[도쿠가와 나리아키]](徳川斉昭)가 내세우는 히토츠바시 요시노부(후의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추천하는 히토츠바시派가 서로 대립하여 싸우게 된다. 이에사다는 이 문제에 있어 별다른 움직임을 나타나지 않았으나 안세이 5년(1858년) 6월 25일, [[다이로]]와 로주를 모집해 이에모치를 후계자로 정할 의향을 드러내고 7월 5일에 히토츠바시파 다이묘들을 처분하는 이례적인 행동을 보였다. 이에사다가 장군다운 행동을 보인 것은 이것이 최초이자 최후라고 한다.
 
안세이 5년 7월 6일에 향년 35세로 사망하였고 양자인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그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