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화이트삭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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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단의 역사 ==
=== 창단 ===
화이트삭스의 전신은 [[세인트 폴]]에 연고지를 두었던 세인트 폴 세인츠라는 구단이다. [[1901년]]에 [[아메리칸 리그]]가 창설되고 연고지를 시카고로 옮기며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에 가입했다. 비슷한 시기에 리그에 가맹했던 보스턴 레드스타킹스(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대항하여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라는 이름을 지었다. 더구나 이미 [[시카고]]에는 [[내셔널 리그]]소속의 시카고 오펀스(현 [[시카고 컵스]])가 존재하고 있었고, [[1874년]]부터 [[1889년]]까지는 같은 이름인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라는 이름을 사용했었다. 화이트스타킹스의 첫 번째 구단주는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즈(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선수시절을 보냈으며, [[아메리칸 리그]] 창설에도 온 힘을 다한 [[찰스 코미스키]]가 했다. 감독으로는 전년까지 시카고 오펀스에서 투수를 하고 있었던 [[클라크 그리피스]]를 [[선수 겸 감독]]으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그리피스는 24승을 올리는 등 자신도 활약을 하며 화이트스타킹스는 창단 첫 해 부터 우승을 차지한다. 또, 이 때부터 지역지인 [[시카고 트리뷴]]이 지면에 화이트삭스라고 간략해서 게재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팀명을 화이트삭스로 바꾸게 된다.
 
=== 물방망이의 기적 ===
[[1906년]]에는 후에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에드 왈시]]로 시작해 [[도크 화이트]], [[닉 알트록]] 등 강력한 투수진을 형성하여 .230이라는 엄청나게 낮은 팀타율을 기록하고도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월드 시리즈]]에서는 같은 연고지를 사용하고 있는 [[시카고 컵스]]와 대결했다. 이 해의 [[시카고 컵스]]는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기록인 팀 116승을 기록할 정도로 강력함을 뽐냈으며, [[시카고 컵스]]가 우승할거라는 예상이 한결같았다. 하지만, 시리즈가 시작되고 1차전에서는 [[닉 알트록|알트록]]이, 3차전에서는 [[에드 왈시|왈시]]가 [[시카고 컵스|컵스]]의 타선을 억눌르고, 6차전에서는 [[시카고 컵스|컵스]]의 에이스였던 [[모데카이 브라운]]을 상대로 맹타를 휘두르면서 4승 2패로 화이트삭스가 창단 첫 [[월드 시리즈]]우승을 차지한다([[월드 시리즈]]가 [[1903년]]부터 시작했으므로 [[1901년]]에 한 우승은 리그 우승이다). 치지는 못하면서 계속 승리했던 이 해에 대해서 화이트삭스에게 '''물방망이의 기적'''(Hitless Wonders)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 블랙삭스 스캔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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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에는 6위를 하며 낮은 순위를 기록하지만, 다음해인 [[1919년]]에는 88승 52패를 기록하며 4번째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러한 팀의 좋은 성적과는 반대로 팀 내에서는 낮은 수준의 급여체제에 대한 불만의 감정이 남아있었다. 구단주인 [[찰스 코미스키]]는 선수의 유니폼을 세탁하는 것조차 꺼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어떤 선수의 유니폼도 더러워지며 그 결과, 당시의 화이트삭스에게 '''블랙삭스'''(Black Sox)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러한 사정을 안 [[시카고]]의 도박사들은 [[신시내티 레즈]]와의 [[월드 시리즈]]경기 전에 화이트삭스의 선수들에게 승부조작을 제안했다. [[1루수]]였던 [[치크 갠딜]]이 가장 먼저 승낙했다고 알려졌으며, 그 후에 [[에디 시콧]], [[조 잭슨]] 등을 포함한 7명의 선수가 승부조작에 가담했다.
 
결국, 시리즈에서는 3승 5패로 [[신시내티 레즈]]가 승리했지만, 시리즈 중간부터 승부조작 의혹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 해의 말에는 폭로기사가 써지는 것으로 승부조작은 진실로 밝혀졌다. 1년후에는 대배심에서 몬제가 되었던 선수들이 증언을 했고, 정상 참작으로 한번은 무죄가 되었지만, 이것을 계기로 창설된 커미셔너에 의해서 8명의 선수가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로부터 영구적으로 추방당했다. 영구추방된 선수들은 '''운없는 8명'''(Unlucky Eight)이라고 불렸으며, 한 소년팬이 [[조 잭슨|잭슨]]에게 물었던 '''Say it ain't so, joe'''(거짓말이라고 말해주세요, 조)라는 말은 이 사건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1919년]]에 일어난 '블랙삭스 사건'으로 8명의 영구제명 선수가 나오면서 화이트삭스는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베이브 루스]]를 영입한 [[뉴욕 양키스]]가 [[아메리칸 리그]]의 맹주로서 군림하게 되며 화이트삭스는 하위권을 맴돈다. [[1930년]]대 후반을 제외하고는 승률 5할을 상회하는 일도 드물게 되었으며, 동시기에 부진을 겪었던 [[보스턴 레드삭스]]와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최하위 경쟁을 계속했다. 그 사이 통산 260승을 기록한 [[테드 라이온스]]나 [[유격수]]로서 시즌 최고 타율인 .388을 기록한 [[루크 애플링]]같은 유명한 선수들도 있었지만 [[1950년]]대까지는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흔히 말하는 '''블랙삭스의 저주'''이다.
 
=== 고 고 삭스 ===
[[1951년]]년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부터 [[미니 미노소]]를 영입한다. 화이트삭스의 첫번째 [[흑인]]선수 였다. [[미니 미노소|미노소]]는 호타준족인 외야수로서 활약했으며, [[1964년]]에 현역은퇴를 선언했지만, [[1973년]](53세)과 [[1980년]](58세)에 2번이나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에 복귀했다. 그로인해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역사상 2번째로 5개의 연대를 활약한 선수가 된다. [[1950년]]에는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로부터 [[넬리 폭스]]를 영입했으며, [[1956년]]에는 화이트삭스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로 꼽히는 [[루이스 아파리시오]]가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리그 최고수준의 키스톤 콤비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들의 견실한 수비와 기동력을 중시한 야구로 점차 상위권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1957년]]에는 [[알 로페즈]]가 감독으로 취임한다. [[1959년]]에는 [[루이스 아파리시오]]가 56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왕을 차지하는 등 특유의 기동력이 작렬했으며, 투수진에서는 39살인 [[얼리 윈]]이 22승을 올리며 [[사이 영 상]]을 타는 등, 투타가 양면에서 활약하는 시즌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화이트삭스는 94승 60패를 기록하며 40년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으나, [[월드 시리즈]]에서는 아깝게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게 지고 만다. 하지만, 이 해의 화이트삭스의 약진을 '''고 고 삭스'''(Go-Go Sox)라고 부르며 화이트삭스의 팬들을 열광시켰다.
 
=== 인기 하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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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허트의 등장 ===
[[1990년]]에 후에 '''빅허트'''라고 불릴 [[프랭크 토마스]]가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에 데뷔하면서 전년도에 최하위를 기록했던 화이트삭스는 2위로 순위가 올라간다. [[1991년]]에는 새로운 코미스키 파크(현 [[U.S. 셀룰러 필드]])가 개장한다. [[1993년]]에는 [[프랭크 토마스|토마스]]가 .317의 타율과 41개의 홈런, 128개의 타점을 기록하며 MVP를 수상하고, [[잭 맥도웰]]이 22승을 거두며 [[사이영상]]을 수상한 것에 힘입어 2번째로 지구우승을 달성한다. 하지만,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그 해에 [[월드 시리즈]]우승을 하게 되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에게 2승 4패로 패하고 만다. 다음해인 [[1994년]]에는 새로 만들어진 [[아메리칸 리그 중부|아메리칸 리그 중부 지구]]로 이동하게 되고, 다시한번 지구 우승을 달성하지만 [[1994년]]부터 [[1995년]]에 걸쳐서 일어난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 선수 파업에 의해서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는 열리지 않았다. [[1997년]]에는 [[알버트 벨]]을 영입하며 [[프랭크 토마스|토마스]]와 함께 괴물 같은 중심타선을 형성했다. 이 둘은 2년간 143개의 홈런과 502개의 타점을 기록하며 다른 구단의 투수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줬지만 2명의 콤비는 2년밖에 가지 못했다. [[1999년]]에는 부진을 겪고 있는 [[프랭크 토마스|토마스]]를 대신해서 [[신시내티 레즈]]에서 이적해 온 [[폴 코너코]]와 화이트삭스에서 뛰고 있던 [[매글리오 오도네즈]], [[카를로스 리]]같은 젊은 선수들이 활약한다. 하지만, 승률 5할로 2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괴물같은 페이스로 1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인디언스]]와 화이트삭스가 경기수에서 21.5경기가 차이난 것을 보면 어느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2000년]]에는 [[프랭크 토마스|토마스]]가 부활하여 .328의 타율과 43개의 홈런, 143개의 타점을 올리며 실버슬러거와 컴백 상을 수상한다. 이번 시즌은 [[프랭크 토마스|토마스]]와 [[매글리오 오도네즈|오도네즈]]의 활약에 힘입어 3번째로 지구 우승을 달성한다. 하지만,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에게 3연패를 당하고 만다. 그 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미네소타 트윈스]]에게 지구 1위자리를 내주며 화이트삭스는 3시즌 연속으로 2위에 머문다. [[2003년]]에는 [[에스테반 로아이자]]가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2.90의 방어율에 21승 9패, 207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탈삼진 타이틀을 따낸다. 하지만, [[2004년]]에 시즌이 진행되는 도중에 [[에스테반 로아이자|로아이자]]를 [[뉴욕 양키스]]로 [[호세 콘트레라스]]와 트레이드한다.
 
=== 88년만의 우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