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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글래빈'''({{llang|en|Tom Glavine}}, [[1966년]] [[3월 25일]] ~ )은 [[미국]]출신의 전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의 선수이다. 포지션은 [[투수]]이다. 주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활동했으며, 팀 동료인 [[그레그 매덕스]], [[존 스몰츠]]와 함께 '애틀랜타 3인방'으로 불렸다.
 
==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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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
==== 1987년 ~ 1997년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부터 지명받아 입단한 글래빈은 [[1987년]] [[8월 17일]]에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에 데뷔한다. 그리고 [[1988년]]에는 선발로테이션에 입지를 굳혔지만 7승 17패로 리그에서 최다패를 기록했다. [[1989년]]에는 14승 8패의 좋은 성적과 함께 리그 3위에 해당되는 4완봉을 기록하며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해가 됐다. [[1990년]]은 10승 12패로 시즌을 보낸다.
 
[[1991년]]에는 [[5월]]까지 6승 0패로 이달의 투수를 받고, 자신 인생에서 처음으로 올스타전 출전과 함께 선발투수라는 소임을 맡게 된다. 그리고 시즌을 끝낼 당시의 성적은 20승 11패, 방어율 2.55라는 엄청난 성적과 함께 다승왕의 타이틀을 따낸다. 그리고 작년에 최하위였던 팀은 9년 만에 리그우승을 차지한다.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2패를 했지만, 팀은 33년 만에 [[애틀랜타]]로 이전한 후 처음으로 리그우승을 한다.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는 1승 1패를 했지만, 팀은 3승 4패로 아쉽게 패퇴하고 만다. 시즌이 끝난 후에는 처음으로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 [[1992년]]에는 [[1954년]], [[1955년]]에 2년연속으로 올스타전에서 선발로 출전한 [[로빈 로버츠 (야구인)|로빈 로버츠]] 이래 처음으로 2년연속으로 올스타전 선발로 뽑혔지만, 1회 1아웃부터 7연속으로 안타를 맞는 등 2회도중까지 5실점의 난조를 보였다. 시즌에서는 20승 8패, 방어율 2.76과 리그 최다인 5번의 완봉을 기록하며, 팀의 2년연속 지구우승에 공헌한다. 전년과 같이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대결이 되었던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 선발등판하여 4안타 무사구 1실점으로 완투승을 했지만, 팀은 3승 4패로 패퇴한다. [[사이 영 상]]의 투표에서는 [[시카고 컵스]]의 [[그레그 매덕스]]에 이어 2위가 됐다.
 
[[1993년]]에는 [[그레그 매덕스|매덕스]]가 팀에 합류하고, [[존 스몰츠]], [[스티브 에이버리]]와 함께 '''4천왕'''이라고 불린다. 22승 6패, 방어율 3.20을 기록하여, [[1967년]] ~ [[1972년]]사이에 [[퍼거슨 젠킨스]]가 3년연속 20승 이상을 기록 한 이래 처음으로 3년연속으로 20승을 기록하며, 동시에 3년연속 다승왕도 딴다. [[1994년]] [[8월]]에는 노사협상이 결렬되고, 선수들은 동맹 파업을 결행한다. 그와 동시에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선수회의 회장이였던 글래빈은 팬으로부터 노여움을 샀다. 동맹 파업이 해제되었던 [[1995년]]에는 선발등판을 할 때마다 야유가 쏟아졌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는 2승 2패로 활약하여 월드시리즈MVP를 수상한다. 그와 동시에 팀은 연고지를 옮긴지 38년 만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된다.
 
==== 1998년 ~ 2002년 ====
[[파일:Tom Glavine 1998.jpg|250px|섬네일|왼쪽|1998년 스프링 트레이닝 당시의 글래빈]][[1998년]]에는 20승 6패와 함께 커리어 하이인 방어율 2.47을 기록하며, 그와 함께 4번째로 다승왕 타이틀을 따냈다. [[사이 영 상]]의 투표에서는 [[트레버 호프만]]이 1위로 글래빈은 그 아래인 2위를 맴돌았지만, 획득포인트에서 호프만보다 올라서 개인 통산 2번째로 [[사이 영 상]]을 수상하게 된다. 하지만, 스트라이크 존의 개정이 행해졌던 [[1999년]]에는 리그 최다인 259피안타를 기록하는 등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다. [[6월 4일]]까지 3승 7패, 방어율 5.00이였지만, 시즌을 끝낼 당시에는 전과 같은 상태로 복귀하여 14승 11패, 방어율 4.12로 시즌을 마친다.
 
[[2000년]]에는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그레그 매덕스|매덕스]]에게 '''컷 패스트볼'''을 배웠다. 그리고 그 해에는 21승 9패, 방어율 3.40으로 5번째로 시즌 20승 이상과 함께 5번째 다승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7월 31일]]에는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역사상 96번째가 되는 200승을 달성한다. [[2002년]] [[6월 26일]]에는 내셔널리그에서 5번째로 같은 팀에서 2,000탈삼진을 달성한다.
 
[[2002년]]에는 [[6월]]까지 방어율 1점대를 유지하는 등 좋은 컨디션을 보이며, 18승 10패, 방어율 2.96으로 시즌을 끝마쳤다. 이때까지 16시즌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브레이브스]]맨으로서 보내며 토박이 인기선수였지만, 같은 해 신 노사협상 때 선수대표로서 앞장 선 글래빈을 「탐욕이 강한 선수의 대표」라며 반감을 가진 선수도 있었다. 시즌 종료후에는 FA가 되어 4년계약을 희망했지만, 구단은 후반기에 좋지 못한 컨디션을 이유로 거부했다. [[2002년]] [[12월 5일]]에 [[뉴욕 메츠]]와 3년 총액 3,500만 달러, 4년째의 옵션을 포함하면 4,250만 달러로 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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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
[[파일:BravesRetired47.png|100px|섬네일|왼쪽|2010년에는 글래빈의 등번호인 47번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메이저]]데뷔 이후부터 은퇴를 할 때까지 단 한번도 구원등판이 없었다. 2011시즌 종료를 기준으로 글래빈의 선발등판수인 682경기는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역사상 11위이며, 글래빈의 상위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구원등판이 있었고([[로저 클레멘스]] 2경기, [[그레그 매덕스]]도 4경기의 구원등판이 있다), 따라서 「한번도 구원등판을 하지 않은 투수」로는 [[메이저리그메이저 리그]]역사상 최다등판이다. 덧붙여서, 구원등판이 없는 투수의 경기순위 중 2위는 현재 [[뉴욕 양키스|양키스]]에서 뛰고 있는 [[CC 사바시아]]의 415경기(2013시즌 종료 기준)이며, 3위는 [[밀워키 브루어스|브루어스]] 출신의 베테랑 우완투수이며 [[2012년]] 은퇴를 한 [[벤 쉬츠]]의 250경기이다.
 
== 선수로서의 특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