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군 (행정 구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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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건국 후 대나라를 분봉하면서 [[운중군]]·[[안문군]]과 함께 대나라의 봉토가 되었다.<ref name="h1l">반고: 《한서》 권1 하 고제기제1 하{{위키문헌|:zh:漢書/卷001下|한서 권1 하 고제기제1 하}}</ref> [[태원군]]을 봉토로 삼은 [[한왕 신]]이 일으킨 반란과 조나라와 대나라의 병권을 쥔 [[진희]]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한 후 대군과 태원군을 바탕으로 대나라를 새로 봉했고,<ref name="h1l"/> 대나라는 이후 대부분의 존속 기간 태원군의 속현인 진양이나 중도에 서울을 두었으나<ref>반고: 《한서》 권4 문제기제4{{위키문헌|:zh:漢書/卷004|한서 권4 문제기제4}}</ref><ref name="h47">반고: 《한서》 권47 문삼왕전제17{{위키문헌|:zh:漢書/卷047|한서 권47 문삼왕전제17}}</ref> 태원나라가 따로 있던 때에는 잠깐 대나라의 유일한 봉지이기도 했다. 원정 3년(기원전 114년) 대나라를 폐지하면서 한나라의 직속 군이 됐다.<ref name="h47"/><ref>반고: 《한서》 권14 제후왕표제2{{위키문헌|:zh:漢書/卷014|한서 권14 제후왕표제2}}</ref>
 
[[유주 (중국)|유주자사부]]의 감독을 받았으며, 원시 2년(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5만 6771호, 27만 8754명을 관할했다. 18현을 관할했다. 아래의 속현 목록은 한서 지리지의 순서를 따르며, 일반적으로 첫 현이 군의 치소이다.<Ref name="h28u"/> 지금의 [[다퉁 시]]와 [[장자커우 시]]의 접경 일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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