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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번 내에서도 사태 타개를 위해 교토로 올라가는 적극적 방법이 논의되었다. 기지마 마타베, 마키타모츠 등은 적극적 행동을 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가쓰라 고고로]](기도 다카요시), [[다카스기 신사쿠]], [[구사카 겐즈이]] 등은 신중한 자세를 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6월 5일]], [[이케다야 사건]]에서 [[신센구미]]에게 번사가 살해당한 변보가 조슈에 알려졌다. 신중파였던 스우 마사노스케, 다카스기 신사쿠와 시시도 마스미 등은 번론의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후쿠바라 모토다케와 마스다 치카노부, 구니시 치카스케 3명의 [[가로]] 등 적극적 파는 ‘번주의 누명을 황제에게 호소하겠다’는 명분으로 거병을 결의했다. 마스다, 구사카 등은 [[오야마자키 정|오야마자키]] 덴노 산(天王山), 보산에서, 구니시와 키지마, 마타베 등은 사가의 덴 류지(天龍寺)에서, 후쿠바라 도토다케는 [[후시미 구|후시미]]에 있던 조슈 저택에서 군사를 모아 진영을 꾸민다.
 
[[6월 24일]], 구사카는 조슈 번의 사면을 바라는 탄원서를 조정에 올렸다. 조슈를 동정하여 관대한 조치를 바랬던 번사나 공경도 있었지만, 사쓰마 번사 [[요시이 도모자네]], 도사 번사 이누이 마사히로, 구루메 번사인 오츠카 케스케 등이 심의를 하여 조슈번 병의 입경을 저지하는 연판 의견서를 7월 17일 조정에 건의했다.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