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식 (1868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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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식'''(鄭東植, [[1868년]] [[음력 4월 2일]] ~ ?)은 [[대한제국]]의 관료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 생애 ==
[[1897년]] 대한제국 [[궁내부]]에서 주사로 근무했으며, 이듬해 [[일본]] 정부의 상훈국을 사무시찰한 뒤 [[1899년]]부터 훈장과 포장, 상여 등을 담당하는 기관인 [[표훈원]]의 관리로 발령받았다. 일본 시찰에서는 근대식 훈장 제조 기술을 습득하였다.
 
이후 [[울산광역시|울산군]] 군수를 거쳐 일본 특파대사로 [[이토 히로부미]]가 파견되었을 때 영접위원을 맡았고, 총영사관, 표훈원 서기관을 차례로 지냈다. 정동식은 표훈원 업무 등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일본을 드나들면서 일본 관리들과 접할 기회가 많았다. [[1904년]] 일본보빙대사를 수행하였다가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훈3등 욱일장을 받았고, [[1907년]] 황태자인 [[의민태자|이은]]이 일본으로 유학갈 때도 배종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설치된 중추원의 부찬의로 임명되었고, [[1921년]] 중추원 편제 개편 후 참의가 되어 [[1924년]]까지 총 14년간 중추원에서 근무했다. [[1912년]] 한일 병합 기념으로 수여된 [[한국병합기념장]]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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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07년도 조사보고서 II - 친일반민족행위결정이유서
|꺾쇠표=예
|발행년도연도=2007
|발행월=12
|id=발간등록번호 11-1560010-0000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