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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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en:Order of Merit|OM]], [[왕립 학회|FRS]], [[1823년]] [[1월 8일]]~[[1913년]] [[11월 7일]])는 [[영국]]의 자연주의자, 탐험가, 지리학자, 인류학자이자 생물학자이다. [[찰스 다윈]]과 독립적으로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의 개념을 만들었다.
그는 [[아마존강]] 유역과 [[말레이 군도]]에서 답사연구를 했으며 아시아에서 오스트리아에 걸쳐진 동물군의 단절현상이 나타나는 [[월리스 선]]을 발견하였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연구는 독자적으로 제안된 [[
== 생애 ==
=== 초기 ===
월리스는 영국 웨일즈, 몬마우스쉐이어의 어스크 근처 리안바독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토마스 베레 월리스와 매리 앤 그린넬의 여덟 번째 자식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허트포드의 중류층이었으며 아버지 월리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지방으로 13세기에 독립운동을 했던 [[윌리엄 월리스]]의 후손이다. 집안은 물려받은 재산이 약간 있었으나 투자 실패와 관리 부실로 안 좋은 편이었다. 그가 5살이 되었을 때 가족은 런던 북부의 허트포드로 이사하였으며 거기서 허트포드 초등학교를 1836년 가정형편으로 그만둘 때까지 다녔다. 그 후 런던으로 이사해서 형인 존과 함께 살게되었으며 큰형인 윌리엄의 소개로 측량사 보조로 일했다. 그는 이때 런던 기계공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공부할 수 있었으며 로버트 오웬과 토마스 페인의 급진적 사회개조론자들의 정치사상을 접하였다. 1837년 런던을 떠나면서 웰쉬 근처의 클린톤으로 이사하였고 1840년에서 1843년 사이에 서부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측량일을 하였다. 불경기로 인해 측량일을 그만둔후에는 레이세스터의 대학에서 제도와 지도제작, 측량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그는 레이세스터 대학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토마스 말서스의 <인구의 원리에 관한 에세이>같은 책들에 심취하였다. 여기서 훗날 [[곤충학자]]가 되는 [[헨리
=== 탐험의 시기 ===
[[윌리엄 헨리 에드워드]],[[알렉산더 본 험볼트]],[[찰스 다윈]]같은 자연주의자들의 선구적인 탐험 여행의 기록들은 웰리스에게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꿈꾸게 하였으며 1848년 드디어 월리스와 [[헨리
월리스는 계속해서 리오 네그로에서 4년을 표본수집과 지도제작, 원주민과
영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18개월 동안 보험금과 남은 물건들을 팔아 생활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아마존의 원숭이에 대해>등 여섯편의 학술 논문과 <아마존 팜나무의 활용>과 <아마존 여행> 두 저서를 썼다. 이때 찰스 다윈등 다른 영국의 자연주의자들과의 교류를 하게 되었다.
1854년에서 1862년 사이에 월리스는 말레이 군도와 동 인도 (현재의
그의 연구와 탐험은 1869년에 <말레이 군도>라는 책으로 펼쳐냈으며 이 책은 19세기의 과학적 탐험을 다룬 책중 가장 잘알려진 책이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출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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