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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을 전멸시켰고 일본 육군은 임진년 침공과 다르게 보급로를 탄탄히 하려고 [[전라도]]를 점령한 후 한양을 공격하기로 한다.
 
당시 일본 수군은 [[이순신]]의 파직과 [[원균]]의 [[칠천량 해전]] 대패로 말미암아 남해안 대부분의 재해권을 장악하였고 일본 육군은 1597년 9월 25일(음력 8월 15일), 9월 29일(음력 8월 19일) [[남원 전투]], [[전주성진주성]]에서 [[조명 연합군]]을 대파하고 남원과 전주를진주를 함락시킨 일본 육군은 전라도를 점령하고 충청도 [[직산]]까지 진격하여 명군과 대치하기에 이른다.
 
또한, 일본군은 전공을 증명하고자 조선인들의 [[코]]를 베어 전리품으로 일본에 보냈고(→[[귀무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구 잡아 서양에서 온 노예상에게 매각했다.
 
==== 직산 전투와 명량 해전 ====
[[남원]]과 [[전주진주]]를 함락한 [[일본]] 육군은 [[전라도]]를 점령하고 [[충청도]] [[천안시|직산]]까지 진격했다. 후에 직산에서 [[명나라|명]]군과 [[직산 전투|대치하여 몇 차례 전투]]하였으나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명량 해전]]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시키자 보급선이 끊길 것을 우려한 일본 육군은 직산을 끝으로 더는 진격하지 못했다.
 
==== 울산왜성 전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