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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전라도|전라]][[수군절도사|좌수사]] [[이순신]]은 그를 장수의 재목이라며 우대하였다. 그는 이순신과 수군들을 도와 혁혁한 공을 세웠다.
[[1627년]]에는 [[경상도|경상]][[병마절도사|우병사]]가 되었고, [[1629년]]에는 회령부사를 시작으로 전라병사, 충청수사 등을 지냈다. [[1635년]] 경상좌병사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중 근왕군을 4만명을 조직해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오곽사가 이끄는 청군 300명과기병300명과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쌍령에서 조우하였다. [[쌍령 전투]]에서 패하자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자결]]하였다.
 
사후 병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