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살루스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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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의 전개 ===
[[기원전 48년]] [[8월 9일]] 전투 당일 카이사르는 좀 더 유리한 진영에서 적군을 상대하기 위해 진영을 물렸고 바로 선제공격에 나섰다. 폼페이우스는 부하인 트리아리우스가 제안한 작전에 따라 자신의 중무장 보병을 출동시키지 않았다. 이로 인해 카이사르의 중무장 보병이 두배의 거리를 달려오게 하여 지치게하고 그들의 전열을 흩어놓아 전투하기에 불리한 상황으로 만들기 위한 심산이었다. 그러나 주력이 고참병인 카이사르군은카이사르의 군단병들은 전투 경험에 따라 폼페이우스의 계략을 간파했다. 카이사르의 고참병들은 도중에 진격을 멈추고 호흡과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돌격하였다. 폼페이우스의 중장보병은 그럭저럭 카이사르 보병의 공격을 잘 견뎠고견뎌내었다. 곧 출동된 폼페이우스 기병 7,000은 배후로 돌아 들어가기 위해 치고 나왔다. 카이사르의 기병은 옆으로 피하는 척하면서 적의 기병에게 길을 열었고 그 앞을 창을 꼬나쥔 카이사르의 고참병으로 이루어진 제4열의 2,000명의 병력이 막아섰다. 카이사르의 기병도 그들의 배후를 포위하였고 카이사르군의 배후로 돌아가려던 기병은 그 자리에서 막혀서 고립되어 무력화되었다. 이로써 폼페이우스가 세웠던 전술 즉, 적의 배후로 돌아들어가 포위하는 전형적인 포위섬멸전의 전술은 막히고 말았다.
 
카이사르의 최정예 보병들은 오른쪽 진영부터 차츰 적의 배후로 돌아 들어갔고 카이사르는 처음 적진으로 돌격할 때 일부러 뒤에 남겨 놓아 힘을 비축해 놓았던 예비병력까지 전력에 가담하게 했다. 폼페이우스군은 처음에는 잘 막아냈으나 시간이 갈수록 진형이 무너지고 말았다. 폼페이우스는 진영이 돌파당하자 급히 말을 타고 라리사로 도망쳤고 폼페이우스군은 무참히 무너졌다. 가까운 언덕으로 도망친 폼페이우스의 패잔병들은 카이사르의 포위공격에 모두 투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