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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혁명의 중심 세력인 농민의 계몽 운동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대중을 제외하고 개인의 [[테러]] 행위로 혁명을 수행하려 하였다. 또 혁명운동에서 탈락하여 부동의 이익을 대표하게 된 자도 있었다. 그 후, 1890년대의 [[자본주의]]의 발전과 [[레닌]] 등의 비판을 받아 그들의 영향력은 사라지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대신 대두하게 되었다. 이 운동의 대표자는 [[게르첸]], [[바쿠닌]], [[라브로프]], [[미하일롭스키]] 등이고, 당파로서는 토지와 자유파, 인민의 의지파, 흑토재분할파(黑土再分割派) 등의 각 파가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헤르젠, 벨린스키가 공화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1870년대~1880년대에 이르자, 바쿠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지식인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인민주의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그들은 농민들을 높이평가하고, 농민을 혁명 운동의 주체로 조직해, 농촌 공동체를 기초로 공화주의 건설이 가능하다고확신했다. 그들은 '토지와 자유당'조직을 결성하고, '브 나로드'(국민속으로)를 표어로 농촌에 들어가 농민을 조직하고자 했으나, 황제에 대한 충성이 두터웠던 농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었다. 그가운데좌절한 인민주의자들 가운데 일부는 니힐리즘의민중계몽을 포기하고 [[니힐리즘]]의 영향 아래 테러리즘을테러리즘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택하는이들은 '국민의[[인민의 의지'라는의지당]]이라는 결사를 조직해 [[1881년]] [[러시아 제국]] 황제 [[알렉산드로 2세]]를 제거, 암살한다.
 
이때문에 그들은 후에 [[알렉산드르 3세]]의 더욱더 가혹한 전제정치에 극심한 탄압을 받게되고, 조직도 분열했다. 이들 공화주의자들은 이론상 러시아 내에 황권주의 발달을 부정했으므로 마르크스주의가 보급됨에 따라 운동도 쇠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