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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871년]](고종 8년) [[4월 23일]] [[신미양요]] 당시 [[광성진]]에서 벌어졌던 광성진 전투에서 중군 [[어재연]] 장군과 아우 재순을 비롯한 군관, 사졸 53인의 전사자중전사자가 발생했다. 이들 중 어재연 형제는 고향인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분별할 수 없어 7기의 분묘에 합장하여 그 순절을 기리고 있다. 조선군은 [[광성보 전투]]에서 최후의 한 명까지도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고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았으니, 외침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키려는 살신호국 정신을 보여준 곳이다.<ref>신미순의총 현장 안내문 참조</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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